벽을 보면서 이야기 하던 시절 - 2
내 별명은 '청개구리'였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혹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반드시 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 늘 들었고, 거의 대부분 행동했다. 누군가가 이것이 좋다고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정말 좋은건가?' 였고, 다수 사람들이 정말 좋다고 하면 '그럼 난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을 해야 겠다'고 결심해 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좋은 것, 좋은 일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왜 나까지 좋은 자리, 좋은 물건, 좋은 조건을 모두 따라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내 머릿속을 이단 옆차기해왔다.
그렇게 좋은 것은 내가 아니어도 모두가 원한다. 걸맞은 사람, 더 원하는 사람이 그 좋은 것과 좋은 사람을 만나길. 어쩌면 너무 삐딱하게 굴었는 지도 모른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다들 그것을 원하니 나까지 경쟁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투쟁심이 저멀리 사라지는 것이다.
어려서 부터 그래왔던 덕분인지 어머니나 누나들은 무엇을 해라, 하지 말아라 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아무 말도 안하고 끙끙댈 수만은 없는 노릇.
어머니는 어느 선을 넘어서 참기가 힘들어지면 폭풍우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서 '그런걸까?'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보통사람의 일상에 어울리는 혹은 일반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삶을 산다라는 것에 대한 억지스러운 거부감이 드는 것이었다.
한 때는 '겁을 내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거부한다는 것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한 요소들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난 가진 것도 없으면서 무척 거만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자신으로 똘똘 뭉쳐있는 녀석이었다.
이런 이중성과 일상에서의 청개구리 성향이 나를 사람들과 차별화하는 방식을 다른 형태로 만들어오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은 타인과의 삶의 질을 비교하고 나누면서 차별화하고 살아가지만, 나는 스스로가 그저 다른 길을 가면서 혼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벽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난 벽과 이야기하듯 공상과 상상에 장시간 동안 잠기는 선까지 드디어 해낸 것이다. 대화의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벽을 마주한 채 이렇게 강렬한 상념을 끄집어 내어 발산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그 가능성을 대학 시절 3개월간의 금언과 침묵 속에서 찾아내었고, 드디어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 어느 선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주저 앉으면 연락이 안되는 나를 찾기 위해서 어머니는 열심히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우리 아들이 xxx명단에 있는 지 한 번 봐주시오.'
가족들이 안절부절하는 가운데, 사고 하루 이틀이 지나서 천연덕스럽게 집에 들어가서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낼름 잠자리에 들곤 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든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저 이 마음대로 며칠씩 집을 비우는 녀석의 숙면을 용인해 주는 것이다.
길에 누워서 혹은 벤치에 누워서 별이 뜬 하늘을 보며 잠드는 것과는 다르게 집의 바닥은 포근하다.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면서도 천장의 흔들거림을 느끼며 다시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