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에 의해서 책을 읽고,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주변 잡기의 콘텐츠들을 소비한다.

아마도 야구와 게임 마저도.

 

사람들이 무섭다고 혹는 역겨운 장면이 나열되는 영화라고 해서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열심히 더 자극적이고, 불편한 영화들을 꺼내 봐도 시시하다.

 

기저귀를 차고 해야하는 공포 게임이라고 플레이해도 무섭지가 않다.

아마도 이럴 것이다 라거나 패턴을 알게 되는 순간 허망해지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이후 삶에 대한 두려움과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이익을 얻고자하는 욕망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따져보고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 같은데,

도무지 그런 것을 봐도 감흥이 없다.

 

자포자기와는 좀 다른데,

사물이 사람이 관계가 모두 내 관심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겹다.

 

가끔 뭔가 이야길 하고 싶기도 하기는 하지만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아서 말을 그냥 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몇 가지 단서를 나열해본다.

 

내가 이야기한 것에 갑자기 일베스러운 반론을 제기한다.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인용하는 화자의 타이틀과 위엄을 들먹이며 말의 신빙성을 더하려 한다.

 

흠...어디서 많이 본 그런 화법이다. 단서를 따라가 본다.

 

난 불신의 인간이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선의로 대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가급적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 그 또는 그녀에게 나는 불신의 인간이 된다.

 

구글의 로봇과 메타태그를 따라가고, 검색어와 이미지를 통해서 확인한 단서의 끝에는 일베에서만 검색되는 이미지와 연관된 사이트들이 나온다.

 

나는 꽤나 까다로운 사람이구나.

 

어짜피 그러든 말든 알아서 살아가겠거니 한다.

 

중얼중얼

 

도데체 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또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나 없어도 되는 일, 나 없어도 되는 세상인데

왜 이렇게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실 나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듯.

 

나라는 인간에 대한 불신.

개인 자전거처럼 활용되는 따릉이

 

밤에 골목을 지나다보니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유자전거인 따릉이를 자기 집 근처에 세워둔 게 보인다.

 

대여소 반납 시 거치대가 꽉찼을 경우 거치되어 있는 자전거의 반납을 위한 잠금장치를 연결해서 자전거를 반납할 수 있는데, 이 잠금장치를 자신이 빌린 자전거에 연결해서 반납이 된 것처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새로 나온 QR로 하는 방식은 아마도 이런 부분을 좀 보완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꽤 많이 보았는데 이 사람들 대부분 부끄러운 것 자체를 모르거나 자신이 마치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여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아 왔다.

 

재수할 때 학원 선생님 중 한 분이 시험에 분명히 나올 것 같은데 잘 안외워지거나 매번 틀리는 1~2문제 정도를 몰래 적어 치팅을 통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자랑(?) 비슷하게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워낙 공부 잘하는 학생이므로 선생님들도 의심을 하지 않고, 아이들도 모르게 잘 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글쎄...같은 반 애들은 알았겠지.

 

한 5~6년 전 쯤에 어떤 업체에 크로스플랫폼 관련 미팅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 개발 팀장과 이야기 중에 iOS 앱을 하루면 배포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당시 프로젝트 일정을 짜면서 iOS 앱스토어 배포는 보통 일주일 혹은 10일 정도를 리뷰 기간으로 잡는게 일반적이었는데, 하루 혹은 길어도 이틀이면 우리는 배포가 가능하다고 호언장담을 해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iOS 앱은 작년부터 배포 작업을 해보지 않아서 지금은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겠네)

 

알고보니 애플에서 긴급 리뷰(Expedited App Review) 시스템을 도입해서 심각한 버그나 시한이 긴급한 이벤트 등에 특별한 절차로 앱의 리뷰를 빠르게 처리해주는 요청을 일반 앱 배포에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자신이 잘 활용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긴급 리뷰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서 자주 신청하면 그냥 리젝되는 경우도 나중에 생겼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좋은 취지로 만든 것들이 오히려 긴급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본다.

 

생활을 하면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의 빈도가 너무 높아서 당황스러운 때가 많고, 때때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라는 주제로 실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을 '명박스럽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런 분들의 특징은 이익에 밝으며 시스템 상의 허점이나 편법을 이용하는 데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거나 그러한 것을 이용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쉽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밤에 산책 나갔다가 골목에 세워둔 따릉이를 보고 갑자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이런 영리하신 분들과 마주하기 싫다.

7년 동안 신작도 없고, 20년 넘게 사골을 우려냈는데...국물맛 비슷한 거라도 내놓아야지.

 

 

넷플릭스에 올라온 TV판은 좋아하는 엔딩곡도 없어지구...

 

 

 

출처: http://bbs.ruliweb.com/family/211/board/300015/read/2188801?page=3

 

수업 끝나고 교실에 남아 있어.

 

 

어디 엔딩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넷플릭스에서 다시 보면서 찾아냈다.

혼자 플젝에 들어가서 작업하고, 마치 프리같이 왔다갔다하니 나름 한적하고 좋다.


아직은 분석/설계 단계라서 지금은 개발 업무 자체는 많지 않지만 이제 곧 바빠질 것 같다.


오는 길에 아침에 구워먹을 식빵을 사기 위해서 종종 들리는 빵집에 갔더니 새로운 초코빵이 있어서 하나 골라봤다.


빵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뭐가 들었냐고 물으니 가나슈가 들어 있다고 한다.


초콜릿과 생크림, 버터 등을 믹스해서 부드러운 초콜릿 맛이라고 한다.


로하스 초콜릿을 생각해보면 된다고 친절한 설명을 해준다.



아무튼 초코빵 속에 가나슈라는 부드러운 초콜릿이 들어있는 빵임.


저녁을 먹고 난 뒤라서 살짝 배부르지만...음...넷플릭스 보면서 함 먹어봐야 겠음.


잘 먹겠습니다.


낮의 일상은 움직이지 않는 늘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물끄러미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아무런 단서도 없는 일들을 마치 논리 정연한 일처럼, 혹은 이 일이 꽤나 중요한 일처럼 만드는 것이다.


흠...


때때로 스스로가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 채로 코드의 오류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힘든 일은 난데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듣도 보도 못한 일을 하거나 

문서 하나 없는 빡빡한 일정의 프로젝트 속에 똑 떨어져 미친듯이 코딩하는 것이 아니다.


일은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관계와 상황이 만들거나 깨기도 한다.


스스로가 열심히 한다고 생각처럼 되는 일이 있다면 좋았을까?




밤의 일상은 해저문 저녁의 한 쪽에 자리한 기억을 더듬는 과정의 연장이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반복적인 정적이 머물러 있다.


게임 온~


나름 이렇게 저렇게 살아온 것 같은데,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일상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가끔은 너무 단순해보이는.





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작업을 하기 전에 들여다봐도 쓸데없는 일인데, 딱히 유용한 것도 아니고, 하고 나서 성취나 만족감을 주는 것도 없는데 해야 하는 일들이 그렇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참 쓸데없는 일이다.'라는 일들을 꽤 자주 해내고 있다.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사람의 어떤 사고나 행동에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 미세한 차이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차이로 인해서 그 표현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


뭐,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지...라고 이야기해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대응을 봐도...누구는 하고, 누구는 하지 못하는 일들.


생각자체도 그렇다.


과연 쓸데없는 일은 쓸모없는 일일까?


나는 왜 스스로가 보기에 쓸데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걸까?


쓸데없는 일들을 왜 자꾸 만들어서 다들 계속하고 있는 걸까? 나를 포함해서


쓸데없는 일일지라도 특정한 목적에 부합한다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쓸모있는 일일까?



계속 한 쪽을 생각하다보면 다른 부분은 자연스럽게 고민하지 않게 된다. 아니 생각할 틈이 없어진다. 생각할 여를이 없다는 것은 시간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


아픔의 강도가 큰 쪽이 적은 쪽을 잊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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