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다.
며칠간 무지하게 덥더니 퇴근 시간이 다되어 검어진 하늘 사이로 천둥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은 원래 그림을 그리면 안될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다.
그리고, 엄마가 부쳐주는 김치, 부추부침개나 빈대떡을 먹으면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 진다.
성근이의 노력으로 우연찮게 만났고, 요즘은 만화를 안그리냐고 묻는다. 만화...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그려본 적이 없다. 사실 요즘 만화체와도 많이 다르고, 개인적인 만족보다는 굳어진 손과 손가락을 느낄 뿐이다.
엄마는 내가 집 안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부엌의 한 쪽 벽면의 도배지를 뜯고하얀색 페인트로 칠해 주시기도 했다. 나는 그저 내 마음대로 그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된다.
하지만, 지금 하얀 종이를 꺼내 쓱싹 그리기 시작하면 실망할 거다.
현재의 내가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리면서 다른 이들의 그림들과 비교하여 우울해질거기 때문에, 그려낸 것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게 될 거기 때문에 실망할 거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랑곳없이 그림을 그려댔는데...뭘 모르는 것도 좋은 일이고, 뭘 모르는 채 계속 길을 가보는 것도 좋은 일인 듯.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나이가 들면 사람은 이것저것 따지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