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은 아래의 기사에서 따왔다.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10

뭐, 변절이라고 부르던지...자의적인 변화라고 부르던지...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배신감의 표현이라던지
모두 개개인의 이유야 있을테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이익'이라는 명제로 이뤄어져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정말 이 땅에 정의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역할에 대한 시대적 사명감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자꾸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현 시점에서 이를 대입해보면 한 기업의 변화와도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지워지지 않는다.

일본인으로 이야기되는 어떤 기업 총수의 변화로 인하여 회사의 근간까지 변화하고 있다.

어떤 이는 확실하게 예스맨의 역할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있고,
다른 이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흔들리고 있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라는 꺼풀로 기본 전제가 변하고 있고...

혹은 선택지의 정착은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업과의 안녕을 고하는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라는 테두리 내에 삶을 영위하는 일반인이 쉽게 회사와도 같이 이를 인식할 수는 없는 노릇.

나같이 마음 편한 사람이나 이리저리 ㅋㅋ 대지만,
실상 산다라는 것은 영속적이지 않으면 그 지속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그저 많은 이들이 산다라는 명제 하나만으로도 변화와 변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옳은 것이 무엇인가? 따라야할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자연히 선택한 길이 어둡고 힘들어도 가야하는 것이다.

나의 움직임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움직임에 나와 나를 둘러싼 곳에 미미하더라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분분분 혹은 놈놈놈

사람들은 세상을 그렇게 지겹게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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