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때로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확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꽤나 많은데, 마치 지금 아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이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와 비슷한 면이 있다.

실은 그 때도 어느 정도 그 흐름과 방향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바로 앞에 보이는 혹은 타인이 이야기하는 여러가지 이익에 눈이 멀거나, 누군가가 던지는 실마리에 주의를 주고 싶지 않았거나 간과하여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익이라는 부분 혹은 후회라는 측면에서의 현실의 자신과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쉬워하고, 지금은 아는 때늦은 특정한 사실 혹은 지식에 대한 아쉬움을 털지 못하곤 한다.

참 이상한 시대다.

사실 일상에서의 개인이 삶을 산다는 것은 주변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과 함께 가기는 하지만 '산다' 혹은 개체의 생존으로 비춰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땅을 뒤흔드는 거대한 도덕적인 관념과 마치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둘러처진 기득권의 오만방자한 자아도취를 떠받드는 것이 바로 수많은 서민들이고, 이러한 서민의 등골을 빼먹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자들이 횡횡한다.

다수의 서민은 마치 최면 걸린 사람들 같다. 

취약 계층을 위한 시스템을 파괴 혹은 점차 무력화 시키면서 공공근로 자리를 하나 주면
'역시, xxx이나 되니까 이런 일자리라도 하나 주지. 안그러면 우리가 밥이나 벌어 먹겠어?'
라고 말하는 서민들의 특성을 이용하는 기득권자들에게 다시 표를 던진다.

반복되는 이 다람쥐 쳇바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들.
생각을 말하면 오히려 구박받는 일상들.


그리고, 때때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런 사람이요.
나는 이런 사람을 알고 있소.
나는 이런 일을 누구와 하고 있소.

자아의 무엇인가가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누군가와 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확신한다.

말에 가미되는 약간의 과장을 넘어선 그 이상한 확장성은 도무지 친근해지지 않는다.

당신이 그 사람을 앎으로써 많은 기회와 득을 볼 수도 있겠다.
당신이 그 사람에게 그 반대로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신은 나는 도데체가 이런 고리가 없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한 시대에 이상한 사람

때때로 침묵이 오히려 낫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겨우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 였다.
그 침묵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그저 생명이 멍하니 멈춰있는 것.

거북이를 쫒아가지 못하는 회색 인간들처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이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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