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는 벙커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려고 노랠 부르던 중,

푸르른 날 오후에 인디애나주의 SWAT 팀에 의해서 구조되었다."



잠시 잠들어 있던 순간 꾸었던 꿈의 기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좋은 꿈이었던 고함을 크게 내지를 정도로 끔찍했던 꿈이었던 일어난 순간 잠시 머물렀다 사라졌던 것에 비해서, 방금 꾼 이 꿈은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따뜻한 온기처럼 남아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가끔 '생생한 꿈을 꾸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눈을 뜨고 바라본 천장은 오월의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고, 다시 감은 눈 속으로 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의 잔상이 보이는 듯 했다.


날이 푸른 어느 오월 주말의 낮잠은 나에게 이처럼 기분좋은 온기를 남겨주었다.


하얀 눈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내리고, 그 소곤대듯 떨어지는 눈 사이로 마당 위로 내리는 눈들이 슬며시 하얗게 세상을 물들어 가고 있었다.


디딤돌 위에 벗어놓은 신발 뒤로 쌓인 눈이 선을 그은 듯 처마 밑 댓돌 주변을 돌아 쌓여가기 시작하면서 집과 마당에 무채색 화폭의 경계를 만들어 갔다.


그냥 멀건히 하늘을 쳐다보다가 내가 하늘 속에 빠진 것인지, 눈 내리는 풍경 안으로 들어와 있는 지 모를 그런 기분이 들어 마루에 앉아서 바로보는 눈 앞의 풍경에 온 몸의 긴장이 사라져 버렸다.


이 풍경은 수묵화로 그려야 제 맛이 날 것 같은 그런 하늘, 그런 풍경이다. 밝은 회색의 하늘에서 점점이 떨어지는 눈과 그 눈이 만들어 낸 저 멀리 있는 산과 들판이 하얀 색상의 물감을 톡톡 뿌려놓은 듯 하다.


이 서늘하게 잠든 고양이 숨소리 마냥 내리는 눈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가 문뜩 마루에 앉아 있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눈을 피해서 온 건지 노루와 사슴, 토끼와 다람쥐, 늑대와 여우, 매와 꿩, 이름모를 많은 새들과 작은 온갖 산과 들의 짐승들이 마루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너무 눈 내리는 눈 앞의 전경에 취해 녀석들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나 보다.


눈 내리는 마당에 발자국 하나 없는데, 어떻게 이 마루에 모두 모여 눈 내리는 풍경을 같이 하게 된 것일까?



짧게 잠든 듯 했는데, 아니 아주 잠시만 마루에 앉아 눈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많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상쾌했다.


마치 내일, 누가 찾아온다고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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