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의 바게뜨 빵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그럼,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어디지?

모스크바는 러시아 수도로 87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그보다 작은 500만 명 가량이 살고 있는 러시아 연방의 제 2의 도시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과거 제정러시아 시절도 있었고, 1914년 '페트로그라드'라고 불리다가 1924년 레닌이 죽은 뒤로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국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직전 러시아 정교의 작명에 걸맞은 '성 베드로의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된다.

"음...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 사온 바게뜨 빵을 손으로 뜯었다.

"뭐가 그래?"

아직 그녀에게는 내가 러시아로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벌써 영하의 날씨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제 2의 도시래. 예전에 '레닌그라드라'고 불리던 곳이라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되서 감동 받은거야?"

그녀는 장난기 섞인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아니, 러시아에서 모스크바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울이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삶은 아니지 않을까? 뭐...그런 생각을 잠깐 해봤어."

"흠...왠 뚱딴지?"

"러시아 사람들도 돈을 벌려면 모두 모스크바로 몰려드는 걸까? 농촌은 점차 피폐해 가고 도시로, 수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

"러시아는 아직 다 그런 건 아니겠지?"

그녀는 내가 가끔 생각나는대로 던지는 이상한 단어들의 조합에 이제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멍하니 뱉는 말들을 듣고 눈이 동그래져서 이상한 사람을 보듯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얼굴을 들고 장난을 치거나, 물끄러미 한 번 쳐다볼 뿐 당황하거나 놀라지는 않는다.

"러시아라고 다를라고. 다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겠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기다란 봉투에서 바게뜨 빵의 끝을 꺼내 올려 조금씩 뜯어 입 속에 우겨 넣으면서 이야기 했다.

"근데, 그 바게뜨 맛있어?"

"응, 맛있어."

"난 바게뜨 왜 먹는 지 모르겠던데..."

"씹으면 고소해, 씹는 맛도 좋구."

그녀는 바게뜨 빵을 먹지 않는다. 종종 내가 마른 오징어 다리 뜯듯이 힘껏 조각을 뜯어 내면 놀랍다는 표정으로 빤히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막 오븐에서 꺼내 진열대에 올라온 바게뜨 빵은 고소한 온기가 빵의 외부를 감싼다. 그 따뜻한 고소함이 점차 딱딱해지고, 질긴 외피를 형성할 때 그 속은 수분과 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속살로 채워 진다.

바게뜨 빵 자체는 특별한 향이나 음식재료가 들어가지 않아서 좋다. 빵칼로 가래떡 썰듯이 잘라서 생크림에 찍어 먹는 것도 좋겠지만, 손으로 조금씩 뜯어서 꽈악 어금니에 힘을 주고 씹어 먹는 게 단단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의맛을 더해준다.

프랑스인들이 아침에 한 잔의 까페오레와 함께 먹는다는 길쭉한 바보같이 생긴 바게뜨 빵.

왜 바게뜨를 먹는데 러시아가 생각나는 걸까?

어쩌면 러시아 관련된 글을 읽어서 러시아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럼, 베트남와 관련된 글을 읽으면서 바게뜨를 먹었어도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을까?

바보같은 생각.

그녀는 잠들기로 한 것 같다. 어느새 작게 쌕쌕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깜짝 깰 것 같아 작아진 빵 먹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짧아진 바게뜨 빵을 보니 갑자기 소공녀 생각이 떠올랐다. 멜키세딕이 갑자기 나타나서 '빵을 좀 나눠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약간은 건방지게 말을 하면, '공평하게 나눠 먹는 건 재미없으니, 넌 약간 딱딱하고 질긴 껍질을 먹을테냐? 속의 부드러운 빵을 먹을테냐?'라고 물어 보고 싶어졌다. 그러면 영리하고 지혜로운 멜키세딕은 '조금의 부스러기면 돼.' 라고 태연히 이야기할 것 같다.

멜키세딕, 나도 피곤하구나.

먹다 남은 바게뜨 빵을 종이 봉투에 잘 넣어 경대 위에 올려놓고 잠들기로 했다.

"이제 이 빵은 전부 네 거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