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기 전에 잠깐 들리라고 했다. 

 

사람들도 많고 복잡한 그 곳에 낮선 이들이 한가득이어도 내가 만날 한 사람, 아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사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철제 책상 맨 밑의 서랍에서 꺼내서 건내 준 종이 봉투 안에 든 빵과 우유, 그리고 몇 가지의 간식거리.

 

그 종이 봉투를 손에 든 채 들어가라는 이야길 듣는다.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손에 든 봉투의 빵 비닐과 과자 비닐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흔들어 댄다.

 

해가 길어 졌는데, 해가 길어 졌는데

 

한강 변의 건물들 사이로 붉고, 노오란 주황색을 띄는 석양이 드리워진다.

 

손에 든 하아얀 종이 봉투.

 

버스에 올라타고 달리는 버스 창에 기대 강물 위로 비치는 저녁 노을의 반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나는 눈을 뜬다.

 

그리운 이름.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관성에 의해서 책을 읽고,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주변 잡기의 콘텐츠들을 소비한다.

아마도 야구와 게임 마저도.

 

사람들이 무섭다고 혹는 역겨운 장면이 나열되는 영화라고 해서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열심히 더 자극적이고, 불편한 영화들을 꺼내 봐도 시시하다.

 

기저귀를 차고 해야하는 공포 게임이라고 플레이해도 무섭지가 않다.

아마도 이럴 것이다 라거나 패턴을 알게 되는 순간 허망해지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이후 삶에 대한 두려움과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이익을 얻고자하는 욕망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따져보고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 같은데,

도무지 그런 것을 봐도 감흥이 없다.

 

자포자기와는 좀 다른데,

사물이 사람이 관계가 모두 내 관심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겹다.

 

가끔 뭔가 이야길 하고 싶기도 하기는 하지만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아서 말을 그냥 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몇 가지 단서를 나열해본다.

 

내가 이야기한 것에 갑자기 일베스러운 반론을 제기한다.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인용하는 화자의 타이틀과 위엄을 들먹이며 말의 신빙성을 더하려 한다.

 

흠...어디서 많이 본 그런 화법이다. 단서를 따라가 본다.

 

난 불신의 인간이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선의로 대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가급적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 그 또는 그녀에게 나는 불신의 인간이 된다.

 

구글의 로봇과 메타태그를 따라가고, 검색어와 이미지를 통해서 확인한 단서의 끝에는 일베에서만 검색되는 이미지와 연관된 사이트들이 나온다.

 

나는 꽤나 까다로운 사람이구나.

 

어짜피 그러든 말든 알아서 살아가겠거니 한다.

 

중얼중얼

 

도데체 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또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나 없어도 되는 일, 나 없어도 되는 세상인데

왜 이렇게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실 나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듯.

 

나라는 인간에 대한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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