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 형님...제발, 해태 타이거즈 감독님으로 와주세요!

혹자는 위기상황을 자초해서 무너지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그런 위기상황을 몇 번 넘긴 것을 보고...자기가 벌린 일을 겨우 막았다고 이야기한다.

박찬호 선수의 경기에는 그런 위기 상황과 손에 땀을 쥐도록 만드는 기운이 분명 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또는 '쉽게 경기를 볼 수가 없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한다.

마치 박찬호 선수가 위기상황을 자초하고, 팀의 타력을 바탕으로 승리를 따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박찬호 선수의 스탯을 보면 그런 말은 조금 과장된 것이다.

분명 텍사스에 간 뒤로는 그런 경기가많은 면이있었고, 요즘 샌디에이고에서도 타력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전반적인 스탯을 보면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박찬호는 선발승을 따낸 104경기에서 697⅓이닝을 던지는 동안 방어율 2.53을 기록한 반면 패하거나 승패를 기록하지 않은 147경기에선 826이닝 투구-531자책으로 방어율이 5.79에 달했다.

박찬호 선수가 승리한 시합에서의 방어율은 고작 2.53에 그친다. 그가 승리를 한 게임에서 그는 3점 이하로 점수를 주고 승리한 셈이다.

그가 운이 좋을 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거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매순간 최고의 메이저리거들을 맞이하는 그가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뿌려대는 공을 보라.

그리고, 마침내 그 위기를 삼진으로 마감하는 순간...내가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쾌감을 맛본다.

나는 그를 '드라마틱 피처'라고 부른다.

그의 공처럼 꿈틀대는 속구와 손바닥에서 묵직하게 들어가는 직구, 그리고 포물선이 꺽여 들어가는 파워 커브.

졸인 마음에 쾌감을 주는 그는 내게 드라마틱 피처이다.

오늘 오랫만에 돌아온 LA전에서 멋진 모습을 기대합니다~!



훌륭한 분석입니다.

엠코와 엠팍의 어느 쪽도 아닙니다만...어쩌면 팩빠 일지도...

출처도 모르고 마구 퍼왔습니다.

공은 찬호가 던지는데...입으로 대신 야구해주는 사람들도 꽤나 있더군요.

네이버의 댓글은 전국민이 비슷하게 생각을 하는 것인가요?

네이버는 좋겠어요...히트수는 늘어서 광고 많아 질테니...

가을에도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는 메이저리그 야구 한 번 봅시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포럼에 가서 <드라군 놀이>와 <엉터리 영어 찌찔이 놀이>하지 말기요.


시커먼 얼굴, 까칠한 피부, 붉게 그을려서 땀을 흘린다.

그리고, 다소 지친듯한 그의 얼굴이 김인식 감독의 언질 이후에 딴 짓 안하고 운동했음을 보여준다.

작년 약간 자신만만하게 다시 그라운드에 복귀할 줄 알았으나, 2번의 선수 지명 동안 그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왕년(?)의 선수에게 모험을 걸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이유였고, 사생활이나 그의 사적인 이슈들이 오히려 팀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우려를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한 투수에게는 중요한 팔꿈치 수술을 받고, 그의 구위가 얼마나 되는 지는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겨우 120Km 중반의 직구를 던질 뿐이라는 이야기들이 보통이었다.

나는 그의 사적인 생활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 지모른다.

하지만 남녀 관계에 있어서 누구 하나의 극단적인 모습만으로 이런 저런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녀 관계의 트러블이나 좋은 관계의 발전은 서로의 잘잘못에 기인하는 경우를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무튼...야구 외에 다양한 기삿거리를 만들어내던 그가, 슈크림 빵을 팔던 그가...'1군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공을 뿌리고 싶다.'라고 눈물을 참았을 그가...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로 5천만원에 싸인을 하고 입단한다.

사람들은 비웃는다. 사생활이 문란하다느니...퇴물투수라느니...120Km대의 직구로 중학교야구에도 통하지 않을꺼라느니...별 신기한 리플들을 다 읽었다.

그런 그가 시커매져서 1군 무대에 다시 섰다.

첫 등판에서 팀 동료들의 도움으로 행운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두 번째 등판에서 무실점으로 중간 역할을 하고 들어갔다.

세 번째 등판에서 첫 홀드를 기록했다.

네이버 리플에는 아직도 비웃음을 남발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프로리그에서 세 번의 등판이면, 시험 등판은 어느 정도 통과했다고 봐야한다.

김인식 감독은 갑자기 그가 다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서 불같은 150Km의 강속구와 폭포같은 포크볼을 던지리라고 데려왔을리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평가하였을 것이고, 올 해 다듬어 내년에 하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가능성을, 남들은 보지 않은 가능성을 본 것이고...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적중했다.

나는 타고난 재능만으로 10~20년씩 야구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야구밖에 할 줄 모르는, 수 천번의 배팅 연습과 수 천번의 투구 연습, 그리고 자신을 컨트롤함으로써 대성한 멋진 프로들은 늘 보아왔다.

이미 그는 전성기의 모습은 잃어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그의 오랜 야구에 대한 센스, 타고난 신체조건, 그리고 다시 공을 던지겠다는 강한 마음이 김인식 감독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야구장에 가게 되면 나는 그의 까칠한 얼굴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꽤나 흥미있는 요소가 되어버린 풍운아 조성민 투수에게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이만수 선수가 해태의 김봉연 선수와 나란히 찍은 사진. 이렇게 보니...이만수 선수가 밝고 풋풋한 미소를...김봉연 선수는 교통사고 후 콧수염을 길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미소 '이만수' 코치.

그의 정식 코치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팬들은 그를 이만수 코치로부릅니다.

그는 40세까지 선수 생활을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아무의 도움도 없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달랑 떠나버립니다.

그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서 선수들의 배팅볼을 던져주고, 공을 받으면서 불펜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이제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구장을 찾는 팬들이라면 모두가 알 수 있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팬들은 그를 동양에서온 베이비 루스 혹은 언제나 미소를 짓는 코치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올 해에도 내년에도 코치로 남아줘서 팀과 투수들에게 안정감을 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전...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당장이라도 모셔오고 싶습니다.

http://www.leemansoo.co.kr/

http://www.whitesoxinteractive.com/4images/details.php?image_id=186

http://www.whitesoxinteractive.com/vbulletin/archive/index.php/t-71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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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10월 8일 회계법인 KPMG뉴욕본사에 초청되어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에 있는 이만수코치입니다.

남의 나라인 미국땅에서 이렇게 많은 한국분들을 뵈니 더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남들앞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젊다라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아리조나에 있는 유학생이 저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극구 사양했지만 내가 벌써 그런 부탁 받을 나이가 되었나?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자리도 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과연 여기 계신분들께 분야도 너무 다른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고민 많이 했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못올것 같다고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팀이 2위를 하는 통에 제가 지금 이자리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제가 이자리에 서 있습니까???

제가 유명해서 였거나 성공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유명해서 라고 하기에는 저는 참 오래전 선수입니다.

요즈음 저보다 더 유명한 선수 너무 많지요.

그러면 성공해서 입니까?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저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먼 사람입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도착한 이곳 미국에서 아직도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 때문에 힘든점이 많고 지도자로서도 초보단계에 있어서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에 도달하기에는 앞이 깜깜할 때도 많은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자리에 초대받았나?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이 나이까지 30년 넘도록 야구밖에 한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긴시간을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고 치고 받으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3번 바뀔만큼 긴 시간을 야구를 해오면서 느끼고 얻은 것 중에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저도 여러분도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에 공감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저는 프로선수로 16년간 선수생활을 했고 이곳에서도 프로팀에서 6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82년도 삼성라이온즈 창단 멤버로 입단했을 때 구단주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저를 불러 “ 프로란 무엇이냐? “고 개인적으로 물어보셨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프로팀이 처음으로 생긴 때여서 프로가 되니 돈 많이 준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지 못하던 초창기시절이라 우물쭈물 하며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선수시절 내내 나에게 따라다닌 귀중한 질문이었습니다.


프로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교육이나 트레이닝이 요구되는 직업이나 경력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저 사람은 프로다” 할때는그 일을 잘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자주 씁니다.

저 사람은 노래솜씨가 프로야 , 축구실력이 프로야 , 심지어 고스톱도 프로야 할 때 쓰게되지요.

이와 반대로 그 일에 숙달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할때 “ 저는 아직 아마튜어 수준입니다 “ 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프로와 아마츄어를 돈이 생기냐 안생기냐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는 그 일에 익숙하고 그일을 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맡은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재능도 필요하고 , 성실도 필요하고 , 인내도 필요하고 등등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할껍니다.

저는 제 프로야구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여러가지 조건중에 가장 기본으로 꼽고 싶은것이 있다면 < 고집과 섬세함 >이라고 하겠습니다.

고집이라고 하면 독불장군이나 내것만 맞다고 우기는것이 먼저 떠오르시겠지만 내가 말하는 고집은 <기본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겁니다.


요즈음은 팔방미인이 환영받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야구선수는 야구를 열심히 해야하고 정치가는 정치를 열심히 해야하고 음악가는 음악을 열심히 해야하는 그런 < 고집 >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은 이렇게 해야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하니까 나도 슬그머니 저렇게 해 버리는 경험을 사회생활속에서 하게 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왕따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생기고 전통을 깬다는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아서 기본을 져버리고 대세에 휩쓸릴 수 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는 때로는 주변 사람들한테 “고집쟁이”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프로선수 생활을 하다보면 야구보다 야구외적인 일때문에 에너지가 낭비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언제나 기본인 야구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는 < 고집 >을 가지고 16년간 선수생활을 해왔습니다.

프로 초창기에는 프로의식이 없는 선수들이 밤새워 술마시고 다음날 경기에 술냄새 무지하게 풍기며 비몽사몽간에 경기 하는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문을 보니 프로야구 역사가 20년이 넘어가는 요즈음에도 심심찮게 선수들이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걸리는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많습니다.


운동선수의 기본은 뭡니까?

건강한 신체 , 건전한 정신이 경기력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의 경우는 몇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현역선수 시절동안 운동에 방해되는 것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예를 들면 술, 담배, 잡기 등입니다.

“ 새나라의 어린이 “ 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에 신경을 썼습니다.

부상의 위험이 있는 어떤 스포츠종목도 취미로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즌이 끝나 겨울이 되어서 가족들과 스키장에 해마다 가도 한번도 발목 부상의 위험이 있는 스키화를 신어보지 않았습니다.

운동선수의 < 기본을 지키고 싶은 고집 >입니다.

그런데 미국 메이저리그에 와보니 이미 선진야구에서는 모터 싸이클이나 스카이 다이빙 등 부상의 위험이 있는 여가 활동은 문서로도 금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선수들까지도 몸값이 끝간데 없이 올라가서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입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금쪽같은 몸을 보호한다고 BMW , 벤츠는 타면서 운동 선수가 지켜야할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뭔가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본에 대한 고집 >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때는 유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학한 중학교에는 유도부가 없어서 운동을 좋아하던 나를 아버지께서 야구부에 밀어 넣어셨습니다.

국민학교때 부터 야구를 하던 친구들 틈에 끼어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물주전자 심부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체격에 성실한 훈련 태도 덕분에 경기출장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자 코피를 흘려가며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따라다니는 많은 별명가운데 “ 연습 벌레 “ “ 독종 “ 도 있었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11년간을 거의 4시간 이상 자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도 칭찬들어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이곳에서 메이저리그 지도자들을 보면서 느낀것 중 하나가 선수들의 단점을 고쳐주기보다는 장점을 개발하고 격려해서 단점을 묻히게 하는 지도 스타일입니다.

나는 현역시절 단점을 고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습하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효과적이지 못한 때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 지금와서의 생각입니다.

우리팀에 카를로스 리 라는 파나마 선수가 있습니다.

야구인인 내가 보기에도 수비솜씨가 너무 엉망이라 저 선수 메이저리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리 선수에게는 뛰어난 방망이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엉성한 수비를 탓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 반쪽선수 “ 라는 불명예가 달릴법 한데 이곳에서는 그 선수의 방망이 솜씨를 계속 믿어주고 밀어주니 메이저 5년차인 지금은 가끔이지만 그림같은 수비를 펼치기도하며 약점이었던 수비솜씨가 날로 좋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칭찬받고 자라지 못했던 제 기억을 생각하며 제 아이들에게는 구체적인 칭찬을 자주 해주며 키웠습니다.

대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인 두 아들들은 아직도 아빠에게 뽀뽀하고,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자세히 상담하는 착한 아이들로 자랐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해주는 말은 “ 아빠는 너를 믿는다 “ “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 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힘든 사춘기를 말썽한번 부리지 않고 건강하고 명랑하게 커 주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 기본에 대한 고집 >외에 제가 < 섬세함 >을 중요한 부분으로 들었는데요.

우락부락한 운동선수에게 무슨 < 섬세함 >이 필요한지 뜻밖이라는 분이 많을 겁니다.

저는 < 섬세함 >의 반대가 대강대강 , 대충대충 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고 대충대충하면 삼풍백화점이 되고 성수대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분야의 사람은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스포츠로 정상에 선 사람들을 보면 섬세함이 필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축구의 차범근 감독 , 탁구의 양영자 선수 , 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박찬호나 김병현 선수도 대단히 섬세한 친구들입니다.

박찬호 선수나 김병현 선수는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는데 화려한것 같아 보이는 박찬호 선수나 괴짜같아 보이는 김병현 선수가 야구에 관해서 만큼은 대충대충이 없는 꼼꼼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겠습니까?

생긴것은 동네아저씨 처럼 털털하게 생겼지만 제 일에 관해서는 보기와는 다르게 무척 섬세한 편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한 야구일지는 30년이 다된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날의 경기상황 , 느낀점 , 보완해야 할점 기록하고 경기외에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낀 감정들도 자세히 적습니다.

인터뷰 시간이나 경기장 도착시간 , 야구 장비나 도구의 준비 , 어웨이 경기시 준비물등 야구에 관련된 것은 작은 것 하나라도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희가족은 여행을 자주 가는데 아내가 짐을 챙기면 여행지에 가서 잊어버리고 온것이 한두개는 꼭 있지만 제가 챙기는 날은 100% 라고 늘 아내가 탄복을 합니다.

내 직업인 야구를 하면서 얻게된 꼼꼼함이 이럴때 빛을 내기도 합니다.


야구는 다른 어느 종목보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스포츠입니다.

점과 점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필요하고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0.03초만에 타자앞에 도달하기 때문에 순발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관전의 재미가 큰 경기입니다.

세계적으로 축구만큼 널리 퍼져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중국이나 유럽쪽에서 붐을 일으킨다면 지금보다 더 활성화 될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메이저리그를 접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에 하나가 한국야구와 미국야구의 차이점이 뭐냐는 겁니다.

양쪽 나라의 야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국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관리야구 체제이며 미국은 자율야구입니다.

한국에서 한동안 자율야구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꽉 짜여진 스케쥴을 느슨하게 풀고 선수들에게 자유를 많이 주는것으로는 자율야구를 정착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늘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관리야구 체제에서는 복종만이 살길이라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고 또 주어진 자유 뒤에 숨어있는 엄청난 책임감을 선수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2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야구는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교육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구단에서 선수단 운영을 할 때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 줍니다.

예를 들면 미국은 시즌과 비시즌이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제가 현역선수 시절에는 성적이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가을 마무리 훈련이라는 명목아래 페난트레이스 내내 쌓인 피로를 풀 사이도 없이 운동장에 불려 나옵니다.

몇주 쉬고나면 동계훈련이 기다립니다.

추운 한국에서 동계 훈련이 끝나면 따뜻한 곳으로 전지훈련을 한달에서 두달가량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마치면 바로 그날로 바이 바이 하고 손 흔들고 각자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그런후 4달이 넘는 동안 철저한 자유가 보장됩니다.

그 다음해 2월 중순에 만나게 되면 비시즌 동안 시즌을 위한 체력준비가 완전히 다 된것으로 간주하고 바로 실전에 들어갑니다.

두달 가까운 전지훈련 동안 쉬는 날이 딱 하루밖에 없는 강행군이지만 탈락되는 선수가 없습니다.

4달간의 자유속에서 각자 알아서 체력관리를 한 결과일겁니다.

제가 현역일때는 12월 한달 쉬는 동안에도 헬스크럽에 출석부를 만들어 놓고 매일 도장 찍어가며 감시 아닌 감시를 당했지만 정작 실전에 들어가면 힘들어 하는 선수가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 되었을 줄로 알지만 구단에서 선수들을 믿고 자율적인 휴가를 충분히 줄수있도록 선수들이 먼저 프로의식을 가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우리나라는 비싼 외화를 들여 해외전지훈련에 오면 3일 내지 4일 훈련 하루 휴식의 일정으로 스케쥴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스프링 트레이닝 두달중에 단 하루밖에 휴식이 없고 34게임 시범경기를 치루어내는 강인한 체력을 준비해야 하는것이 메이저리거들의 당연한 책임입니다.

운동장 밖으로 나가면 일체의 개인사생활이 자유스럽게 보장되지만 내가 겪어본 메이저리거들은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도에 넘치는 음주나 외박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또 가족들이 언제든지 어웨이 경기를 따라올 수 있도록 구단에서 배려해 주기 때문에 아내나 애인들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 초창기에 어웨이 경기 갔을 때 밤마다 점호를 하고 코치들이 로비에서 12시까지 못 나가도록 보초를 서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메이저리거들은 평생 쓸 부와 엄청난 명예를 쥘 수 있는 기회앞에서 누가 뭐라고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자신을 관리합니다.

구단에서 관리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하거던요.

우리나라도 이제 몸값이 많이 올라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 좋은 기회앞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 자기일에 대한 고집과 꼼꼼함 >으로 자신을 관리 한다면 더이상 구단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장점은 뭘까요?

열심히하고 예의 바르다는 소리를 제일 많이 듣습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팀에 최대한 협조 합니다.

이곳에서는 야구보다 가족들 일이 우선일 때가 허다해서 제가 깜짝놀란 때가 많았습니다.

삭스팀 제리 감독은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식 한다고 중요한 상황에서 3일간 빠지고 어떤선수는 아내가 4번째 아이 출산한다고 2일씩 빠지고외삼촌 돌아 가셨다고 3일 빠지고 외할머니 돌아 가셨다고 3일 빠지는 등등…………

부모 임종도 못보고 검은 리본으로 슬픔을 대신하며 경기에 나서는 한국선수들을 보면서 운동을 한 나에게는 황당한 이유로 밖에 안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20년이 넘는 야구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야구인으로써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활성화되는 길을 생각해봅니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여주는 것 외에도 야구장 시설로, 팬서비스로, 이벤트로, 심지어는 먹거리로도 관중들을 열심히 불러 모으고 있는 이곳 메이저 리그의 야구가 국민들의 건전한 여가 선용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을 보면 부러움을 느낍니다.

이제는 우리도 구장이 크든 작든 , 구장에 뚜껑이 있든 없든 팬과 선수가 함께 즐거울 수 있고, 그리고 구단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야구단을 통하여 자신들이 추구하는 기업이미지를 잘 홍보할 수 있는 ( 우승만이 기업이미지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마인드가 있어야 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야구는 야구단운영만으로 이익을 만드는 진정한 프로스포츠단 운영이 어려웠기때문에 미국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실정에 맞는 좋은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프로야구 1세대들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구단만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니고 선수만 잘 해서 되는 일도 아닌것 같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나가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출발이 지역 연고 출신선수로 시작되다보니 야구의 내용이나 특징보다는 내 지역선수에 대한 애착이 앞섰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야구단이 발전하고 팬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크게는 구단을 응원하고 작게는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떤 구단이 어느 지역선수와 코칭스텝으로 구성하든지 간에 그 구단이 지향하는 목표나 팀 색깔이 팬들의 마음에 든다면 그 구단자체를 응원하고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어느 팀에서 뛰든지 그 선수의 팬이 되어서 그 선수가 속한 구단을 응원 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나라 보다 야구 역사가 훨씬 오래된 미국의 분위기입니다.
( 미국과 우리나라 야구는 출발도 다르고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른 점이 많아서 꼭 어느 쪽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저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선수말년에 고생좀 했습니다.

새로 바뀐 감독이 수십년을 해오던 나의 포지션이던 포수자리에서 1루수로 바꾸며 출장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야구를 하면서 팬들에게 , 내자신에게 한 약속이 현역선수 40세까지 였습니다.

무조건 오래하고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로 현상이 판치는 한국 야구계에서 선수 정년을 높이고 선수도 직업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선수 수명이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아까 말씀드렸던대로 야구선수로서 야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열심히 하는 < 기본에 대한 고집 >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 섬세한 부분 >까지 꼼꼼히 챙겨서 뒤에 야구를 하게될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앞도 뒤도 보지않고 열심히 내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래도 3관왕 , 홈런왕이 무색할 만큼 한 경기에서 한타석 정도의 차례가 돌아오는 벤치 생활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것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관중들이 이만수 이만수를 부르면 경기에 승패가 걸려있지도 않는 중요하지 않는 순간에 마지못해 대타로 내보내주면 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갈 때의 심정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합니다.

은퇴 3년전쯤 우리팀의 단장이 나를 불러서 2년동안 미국야구연수를 권했는데 사람들은 너무 좋은 기회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30살만 넘으면 노장소리 듣고 35살 되면 완전히 퇴물취급 당하는 이런 풍토는 계속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야구를 참 좋아했고 내가 하고있는 일이 맞다는 고집으로 나머지 3년을 벤치에서 잘 보냈습니다.

그 덕분에 스타선수가 절대로 알 수없는 후보선수들의 고충도 알았고 경기를 지켜보면서 직접 시합하는것과는 다른 경기의 흐름을 읽는 것도 배웠습니다.

우스운 이야기는 내가 한참 시합 뛸 때 공수 교대 하면서 벤치에 들어와 시원한 음료수를 찾으면 없을 때가 자주 있어서 의아 했는데 내가 벤치에 앉아 있어보니 후보선수들이 할일은 벤치에서 음료수 먹는것 뿐입디다.


나는 40살까지의 현역선수 생활이란 약속을 이루고 미국으로 선진야구를 배우러 왔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곳에 이 나이에 공부하러 오는 것이 맞나?하는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길로 가라는 가족과 팬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현역 선수는 아니지만 지도자로서의 훈련도 역시 < 기본에 대한 고집과 섬세함 >이 필요하더군요,

나에게 주어진 일은 야구이고 야구에서 만큼은 기본을 철저히 지키고 대충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누구보다 제일먼저 야구장에 도착해서 개인체력 훈련과 훈련일기를 쓴것이 벌써 4년째가 되다보니 팀전체가 만수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라고 말해줍니다.

4년간의 홈경기중 작년에 단 하루 박찬호선수와 점심을 같이하고 오던중 길을 잃어버려 찬호도 나도 지각을 했는데 팀에서 무슨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늦게 올 사람이 절대 아니라며 걱정을 하고 이곳 저곳으로 연락을 하고 야단이 났습니다.

메이저 일정 162경기는 미국 전역을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해야 하기 때문에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쁘고 빡빡합니다.

짧은 영어로 이 스케쥴을 놓치지 않고 따라 하려면 꼼꼼함은 필수입니다.


미국생활은 정말 멘땅에 헤딩하기 같은것이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것이 이렇게 힘들줄 상상도 못했지만 그래도 말년의 벤치생활 보다는 낫습디다.

아들뻘인 새파란 선수가 뒤통수를 건드리며 내 이름을 부를때면 피가 꺼꾸로 솟는것 같고 , 팀내에 고약한 코치 한명이 마늘냄새 난다고 노골적으로 놀리면 보따리를 싸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내나라가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을 다 잡으며 한해 한해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보고 배운것들은 훗날 지도자가 되면 쓰이게 될 귀중한 자료기 때문에 열심히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이곳에 더 남아있게 될지 한국에 돌아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어느곳에 있던지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것이라는 고집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와는 무척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지만 제가 바라기는 여러분께 주어진 일에 대해 < 기본에 대한 고집과 섬세함 >으로 여러분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이 속해있는 분야가 한단계 UP – GRADE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이만 마칠까 합니다.


박찬호 선수의 삼진 퍼레이드
박찬호 선수의 라이징 패스트볼.
94마일의 속구와 화려한 뱀꿈틀 무브먼트를 다시 보여 주었다.
마음껏 뿌려댄 꿈틀이 직구와 뚝 떨어지는 파워 커브, 슬러브들이 다시 다저스 시절의 파워 피칭을 보여주는 듯했다.
외계인도 스르륵 무너져 내린 시합에서 단연 돋보인 피칭으로 오늘의 선수로 뽑혔고, 동료 선수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승리를 자축하였다.
내셔널리그에서 타격도 주루도 수비도 박찬호 선수에게는 어울리는 것이다.
강한 팀에게, 강한 선수에게 강한 그를 우리는 월드시리즈에서 보기를 기대한다.
다시 돌아올 것을 믿었고, 야구는 한 편의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줄 것을 믿었다.
이런 투구를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돌아와줘서 고맙다.


God bless you, please, Mr. Robinson
Heaven holds a place for those who pray(Hey, hey, hey, hey, hey, hey)

사이몬 가라사대...로빈슨에게 축복이 있을지어다.

하지만 사이몬은 몰랐다. 로빈슨이 바보인 것을...

그는 왕년의 스타 플레이어였으나 인내와 후덕함, 그리고 기다림의 미덕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로빈슨 감독은 김선우를 들쑥날쑥한 투수 기용에...때때로 감정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조기 강판 등으로 홀대를 하더니...어느날 갑자기(사실은하는 짓을 봐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으나)웨이버로 공시하였다.

'어? 바닥에 멀쩡한 투수가 떨어져 있네?' (최훈씨 죄송합니다)

로빈슨 감독이 김선우 투수를 길 바닥에 내놓자 선발진이 보통 5,6점대의 방어율을 자랑하고, 전년도 성적도 바닥이라서 선택권이쫌 우선적으로 있는콜로라도가 낼름 주웠다.

얼쑤~

콜로라도는 중간 계투나 땜질용으로 사용되었던...약간은 미지의 투수인 김선우를 주운 김에 선발로 함 등판시켜보기로 한다.

더블헤더 첫 시합의 선발은 김선우, 두번째 시합의 선발은 김병현.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한국에서는 코리안데이니...뭐니 하는 것 같지만, 콜로라도는 개의치 않는다. 그날 두 투수가 생각한 것 만큼 괜찮은 투구와 역할을 해주었고, 연승을 거두게 되었기 때문이다.(작전 성공!)

당일 김선우는 손톱에 피가 나는 등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한 순간에 연타를 맞고 2점을 주는 피칭을 보였으나 4회 콜로라도의 만루 찬스에 대타로 교체만 안되었다면 충분히 5회는 마감해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과는 늘 스탯으로 남으나 사람으로 이뤄진 조직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드라마는 스탯 이상의 것이 필요한 법이다.

콜로라도의 투수진으로써 합류하게 된 김선우 선수의 호투를 기대한다.


Satchel on his Knee

"Age is a question of mind over matter. If you don’t mind, it doesn’t matter."

- Satchel Paige

"야구 좋아하세요?"

여기 아무도 치지 못하는 공을 던졌던 한 흑인 투수가 있었습니다. 전설과 같은 기록을 구전을 통해서 전해지는 한 선수가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 깜짝등장했던 것은 59세 이던 196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시합으로 인해 그는 최고령 메이저리거로 기록되었고,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다시 덕아웃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첼 페이지(Satchel Paige)

이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어디선가 보았던아래의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일까 라는 의혹에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았습니다.

사첼 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 http://www.satchelpaige.com/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가장 위대한 투수, 사첼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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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에도 일반인들에게는 잘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영웅들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흑인 선수들의 출전을 막았던 당시에 흑인 스타들로만 이루어진
야구 리그가 있었는데 바로 <니그로리그>다. 바로 그 니그로리그를 거쳐간 수많은 스타들이 바로 숨겨진 영웅들이다.


메이저리그의 선수들보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그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야구계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TVnTODAY에서는 앞으로 약 한달에 걸쳐서 <니그로리그>의 잊혀진 스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제 처음으로 소개하는 스타는 야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투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야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투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통산 최다승(511승)에 빛나는 사이 영,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앞세웠던 월터 존슨, 또는 놀란 라이언 아니면 최고의 왼손투수 샌디 쿠팩스 등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사첼 페이지를 가장 최고의 투수로 손꼽고 있다.

지난 1965년 캔자스시티 어슬래틱스 유니폼을 입은 사첼 페이지라는 투수가 은퇴후 13년 만에 다시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 깜짝 등판함으로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59세, 거의 환갑을 앞두고 있던 그가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사첼 페이지는 단 1안타만을 허용한채 3인닝을 완봉으로 틀어막고 다시금 은퇴를 하였다. 그는 이로서 메이저리그 최고령 등판이라는 앞으로 영원히 깨지기 힘든 기록을 수립하였다.

59세에 다시 마운드에 나타나기 전, 사첼 페이지는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 동안 28승31패32세이브에 3.29라는 평범한 기록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다니, 어떤이들은 기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페이지는 1948년 메이저리그 최고령 기록인 42세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 47세이던 53년까지 현역생활을 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42세라는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까?

이유는 단 한가지. 그가 흑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첼 페이지는 메이저리그에 진입하기 전까지 니그로리그에서 무려 23시즌 동안 니그로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페이지가 밝힌 자신의 통산 승수는 무려 2000승.


당시 니그로리그는 기록관리가 엉성해 선수들의 기억에 의존해야 할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는 거의 매일 등판했었다고 하니 터무니없는 기록만은 아닌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즌당 평균 100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이다.
거의 매일 등판해 승리를 거둬야 한 시즌에 100승을 거둘 수 있다.
페이지가 이렇게 초인적인 등판 횟수를 기록했던 니그로리그의 특성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페이지가 등판하지 않으면 관중이 입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던 니그로리그의 구단주들이 페이지의 등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첼 페이지는 무리한 등판에도 불구하고, 선천적인 체력을 발판으로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했다고 한다. 페이지가 니그로리그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이유는 최고의 투수라는 점 이외에도
페이지가 독특한 쇼맨십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만화에나 나올 장면인 외야수를 다 내야로 불러들여 바닥에 주저앉게 하고
타자에게 공던지는 도박적인 플레이도 즐겼으며,
일부러 볼넷 3개로 무사 만루의 위기를 자초한 뒤 3연속 삼진 잡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9명의 타자를 차례로 삼진으로 잡기 등 투수가 할 수 있는 쇼맨십은
다 페이지가 실제 경기에서 시연했다고 전해진다.

페이지는 불같은 강속구와 함께 투수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공을 구사했고 컨트롤 또한 완벽했다고 전해진다. 페이지의 강속구가 어느정도 빨랐는지 여기 니그로리그에서 구전되고 있는 일화에 의하면 전성기때 페이지가 강속구를 던지면 공기 포수의 미트로 들어오는 동안 공기와 마찰,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물론 과장이 많이 섞여져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같은 강속구를 앞세워 메이저리그 선수들과의 시범경기때 한경기에 22개의 삼진을 잡아낸 적도 있었다고 하니 그의 실력만큼은 최고임에 분명했다. 이 경기에 출전했던 당대 최고의 타자이자, 연속경기 출장기록으로도 유명한 뉴욕 양키스의 `철마` 루 게릭은 "페이지는 지금까지 본 투수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빠른 투수"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페이지는 무서운 투수였다.

페이지는 1906년생이라고 알려져있지만 1899년 혹은 1903등 출생연도와 관련된 다양한 설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로 이제는 전설적인 투수로서 기억되고 있다.


페이지는 67년 `난 영원히 공을 던질거야`라는 감동적인 자서전을 발표했을 정도로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였다. 그는 늘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만약 당신의 나이를 잘모르겠으면, 내가 과연 몇살이었으면 좋겠는지를 먼저 생각하라> 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만큼 젊음을 간직하며 살아온 그는 메이저리그에서의 활약은 미약했지만, 71년 니그로리그 출신 선수중 최초로 명예의전당에 헌액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지난 주 '과연 여름 시즌에 빅딜이 이뤄질까?' 라며기다리던 메이저리그에 빅딜아닌 빅딜이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밀어내기'라고 생각했다.

천만달러 이상을 받는 파드레스의 골치덩어리가 된 필 네빈을 내보내고, 파드레스는 박찬호를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텍사스는 박찬호를 파드레스로 보내면서 고마움을 여기저기에서 표현했다.

박찬호는 거부권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묵묵히 트레이드를 받아들였고, 짐을 싸들고 파드레스에 합류한다.

파드레스 이적 후 첫 등판은 4.1이닝 동안 8안타를 맞으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9일 오전 7시 5분에 파드레스의 홈에서 오늘 승리한 서재응이 있는 메츠와의 시합에 등판한다.

이번 경기부터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무사히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과연 계륵인지 돌아온 에이스인지는 조금 더 지난 시점에서 보아야 할 것 같다.

박찬호 선수가 가을에 야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텍사스가 바보짓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길 희망한다.


서재응 선수의 2005년도메이저리그 스탯(현재)

3W1L /ERA:1.42 / IP:25.1 / SO:18 / BB:4

뉴욕 메츠의 홈에서 보여준 서재응의 투구는 한마디로 '멋지다' 였다.

관록의 매덕스를 상대로 이번 시합에서는 매덕스를 먼저 강판시키며, 이전 시합의 패배에 대한 답례를 하였다.

7과 3분의 1이닝 무실점.

매덕스 역시 4회 이후에는 매 이닝 공 몇 개로 이닝을 마치면서 쉽게 경기를 풀어 나갔고,7회 동안 2점을 주는 퀄리티 피칭을 보였으나 서재응의 무실점 투구와 구대성의 홀드, 헤르난데즈의 짜릿한 삼진, 9회 루퍼의 마무리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매덕스도 잘 치고, 잘던졌으나 서재응이 더 내용상으로 뛰어난 투구를 했다.

(매덕스는 서재응에게 첫 안타를 뽑아내고, 도루까지 했다)

서재응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마음껏 공을 던지게 되길 기대한다.

< 뱀다리 >

뉴욕 메츠의 홈으로 사용되고 있는 셰이 스태디움은 2008년까지 사용될 것 같다.2009년에는 새로운 구장이 오픈될 것 같다.

원래는 2012년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다목적 구장으로 만드려고 했던 것 같은데, 런던이 개최지로 결정되어서 야구 전용구장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메츠의 새로운 구장 예상도 - http://www.stadiumpage.com/stpages/me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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