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몽환의 모래시계'가 한국에 있을 때 출시되었다.

덕분에 낼름 집어 오기는 했는데, 대화와 퍼즐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일본어를 잘 모르는 내게 꽤나 골치 아픈 게임 진행이 되고 있다.

사실은 PSP도 구매해서 플레이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있지만, 아무튼 언어의 문제가 약간은 발생하도록 게임 진행이 구성된 편이다. (대부분의 RPG들이 그러하지만...)

그래픽은 NDS 치고는 꽤나 깔끔한 3D이고, 바람의 택트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 있어서 귀여움이 두 배, 기쁨 두 배.

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멀쩡했다.

KE923편에서 내려 서는 순간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

공기의 이물감 혹은 기대하지 않게 다른 곳에 온 듯한 낯선 느낌.

왜 이렇게 뒤바뀌어 버린 것일까?

도착 후 아프기 시작해서 떠나는 그날까지 계속 몸의 이상 증후들은 계속되었다.

바보같은 짓을 계속했고, 반복하는 바보 짓에서 겨우 몸을 추스리는 정도.

도데체가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방이사님은 얼추 회사 내 정치에 대한 예언을 했고, 사람을 소개했고,

나는 결혼을 축하드렸고, 부조를 했고, 사람을 만났다.

결국 사람 사는 패턴이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경험있는 사람들의 조언과 평가는 어떤 형태로든 가치가 있다.

어느 정도 적중한 예언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역시나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지독스러운 개인주의와 무책임한 별나라 여행.

도대체 그 시작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잘못된 것인지 잘된 것인지 나의 어리석음이 새로운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관련기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668639§ion_id=107&menu_id=107

윤석민 어린이의 현재 성적 (6.17일자)

2007 시즌
소속방어율경기완투완봉승리패전세이브홀드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삼진실점자책
KIA2.541421490095 2/3823264523027

그렇습니다.

윤석민 어린이는 지금 2위의 방어율에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까지 타이거즈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유망주입니다.

한기주, 전병두, 김진우, 신용운등 이 엄청난 어깨들 사이이에서 무럭무럭자라고 있는 유망주입니다.

14경기 동안 평균 6.5이닝 이상을던지면서 현재 95이닝 이상 소화했고, 방어율은 2점대 중반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성적입니다.

그런데...4승 9패랍니다.

석민 어린이가 공을 던지는 타이거즈 경기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시합이 되곤합니다.

얼마전 영입한 스코비도 마수걸이 1승을 하기까지 참 부끄러운 상황이 적지 않았지만...석민 어린이의 경기에 비하면 스코비는 축복받은 편이라 하겠습니다.

도데체 석민 어린이를 어떤 궁지에 까지 몰아 넣고 싶은 것입니까?

타이거즈 관계자 여러분.

자라나는 석민 어린이의 눈물을 거두도록 좀 도와주시지요.

타선 좀 매일같이 바꾸지좀 말고...수비나 좀 보강하면, 석민 어린이에게 평균 2~3점이면 충분합니다.

야구장가서 보고 싶은데...잠실 3루 스탠드에 가서 석민 어린이가 공 던지는 거 보면...눈물 날 것 같습니다.

꼴지 하는 건 그렇다 치고, 유망주들의 포지션과 미래를 엉망으로 만들어서...그저 평범한 선수로 만드는 짓은 안했으면 합니다.

석민 어린이, 더욱 힘내시길 바랍니다.

타이거즈 팬 꿜리.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생이나 삶이라는 것도 모두 시간에 종속이 되어 있다. 이놈의 시간이라는 것이 지금의 현재를 가리키는 순간에는 나에게 어떤 강한 힘을 가지지는 않는데, 흐를수록 지날수록 큰 힘이 되어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가지게 한다. 사실 일상의 시간이라는 것은 무책임한 나의 태도와 습관을 반영하여 흘러가는 것이기에 지나고나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게 만들곤 한다. 갈림길이나 분기 앞에서는 선택적인 의지가 발동하고, 이에 맞게 결정하여 몸과 생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여 왔지만 그게 정말 스스로의 의지인지에 대하여 물어보지 않을수 없다.

나. 하나의 사고하는 형상물인 나는 결정을 내리는 진정한 주체인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나는 외모라는 외피의 특이한 형상을 띄고, 이 형상을 통해서 타인의 영상 이미지에 각인이 된다. 그 외에 습성과 태도, 말투, 혹은 일상과 업무 상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비이미지화된 감각으로 추가적인 정보를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수 많은 정보들도 그것 자체로는 '나'라는 형상이 빚어내는 실체를 보기보다는, 외부적인 요인과 비교 및 분석, 그리고 동시대의 관습과 평가 등에 의해서 가공되는 정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행위의 근간에도 이러한 정보가 스며들어서 '나'라고 불리는 형상물의 외피와 함께 저장되는 여타 정보의 내용물이 결정되어 진다. 이 특이한 외부 요인과 '나'는 지속적으로 동일 시간대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나'라는 특이 존재의 결정이 '나'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인지 '나'는 궁금증을 갖게 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관계들과의 연관성을 천천히 되짚어보면, 연결고리의 애씀없이 그저 흘려보내는 일상이 주된 흐름이었다는 것과 철저하게 개인주인적이고, 게으른 하루에 만족하는 생활을 해왔기에 이것에 대한 인지는 하루의 일상사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서 시각화하는 장면의 대부분은 하늘의 흘러가는 구름이나 길을 달리는 자동차나 끊임없이 재생되는 MP3의 LCD 재생 화면을물끄러미 쳐다보는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지나간 잔상들을 계속 읽어댄다. 이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 흐름의 끝에서는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때가 있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때를 맞춰서 일을 진행하고, 이를 받아들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의 식사를 하고, 아이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의 때를 맞춰서 그 때에 걸맞는 과정을 겪으려고 한다. 당시 사회가 보여주는 기본 규범에 맞게 '때'는 그렇게 맞춰지고 사람들은 그 과정을 잘 겪었는 지로 '나' 혹은 다른 이들의 사회적인 범위를 규정해준다. 특정한 때를 놓친 사람들도 있고, 혹은 때맞춰 잘 과정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때'라는 것은 특정한 규범이 되는 것인가?

몇 가지 궁금한 일들에 대하여 질문을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모두 지나가 버려서 '나'라는 존재가 '때'의 과정을 모두 거쳐서 이제 시간의 흐름이 멈추게 되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인가? 작은 방에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해본 그 시간의 멈춤은 단지 '어두움' 뿐이었다. '정지'.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그것이 영원한 곳인 '천국'으로 가는 시작점이라고 불렀다.

탐욕스러운 하루. '나' 역시도 그 속에서 밤낮으로 눈을 꿈뻑이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역시나 지겨운 하루. 신호와 프로세스가 종료되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프로그램처럼 움직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비의 대부분을 타인을 의식해서 하곤 한다.

타인 혹은 집단 의식 속에서지출과 수입이 많이 결정되는데,

이러한 부분이 소득이 커질수록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선택과 결정에 이르기까지 마지막행위에 있어서는스스로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스스로'의 선택점과 기준은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 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자율적인 행위에 의한 것일까?

일반적인 욕구.

배고픔, 성욕, 수면 욕구 등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것들도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취사되고, 선택되는 상황이 증가한다.

이 모순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상한 유형으로 분류되거나

그러한 집단과 타인의 시선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를 가진다고 여겨진다.

패션쇼의 진실은

내가 멋진 옷을 입고 기쁨에 젖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아니라

남들의 시선을 받는 자리에 있는 것을 상상하며 기대하는 것이다.

침흘리는 늑대와 여우들 속에서 하나 둘씩 떨어지는

브랜드의 보여주기 상상력을 그저 하나 얻고 싶은 것 뿐이다.

소비는 기능성보다 너무 많이 이미지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슬프다.

한국 갈 때 된 것 같다.

지금껏거의 혼자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쭈욱 혼자일 듯.

혼자서 사람들 속에서 쑈하는 것도 지겹구나.

사.회.생.활.

히키코모리로 몇 개월 혼자 짱박힐만한데가 없을까...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최고 못난이인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줄 미사키를 만날지도...

아.멘.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

-최근 정치상황에 대한 심경을 밝힙니다.

‘성공한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덕담으로 이 말을 해 주었으나 저는 한 번도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실패한 대통령’. 참으로 싫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했고, 누가 실패한 대통령이라거나 국정실패라는 말만 하면 논란거리가 되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참 어려웠으나 다행히 이제 한고비를 넘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에 빠지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표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절박한 때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그것도 당적을 정리한 대통령이 왜 자꾸 정치에 대해 얘기하느냐고 합니다. 지지율이 좀 올라 교만해진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지금처럼 절박한 때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지지율이 한자리 수까지 떨어졌다는 잘못된 언론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성공하는 것 말고 정치인 노무현이 무슨 다른 꿈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열린우리당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묻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한 전직 기자를 만났더니 그 기자가 당선자 시절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선 직후 저를 인터뷰 했는데, 대통령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저에게 물었더니, 저는 한 30초나 생각하고 나서 “정-계-개-편” 이 한마디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도 잊고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까? 87년 통일민주당의 분열과 90년 3당 합당으로 일그러져버린 한국의 정당 구도, 그 이후 지금껏 한마음으로 매달려 왔던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 이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굳이 저만의 소망이었을까요? 목이 터져라 “구-웅민 토-옹합”을 외치고 박수를 치던 지지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말한 ‘정계개편’은 그동안 우리 정치에 자주 있어 왔던 정계개편과는 그 뜻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하여, 국회의 다수를 만들기 위하여 원칙 없이 편의에 따라 정치를 왜곡시킨 그런 이합집산이 아니라, 일그러진 우리의 정당구도를 바로잡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정치를 정치답게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은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열린우리당이 다시 표류하고 있으니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다시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표류하고 있는데 불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역사의 대의가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88년 4월의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의 모든 후보들은 ‘야당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냥 공약의 하나로 내건 것이 아니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연설 때마다 외쳤습니다.

그 결과 13대 국회 시절은 초반부터 ‘야당통합’이 언론과 국민의 화두가 되었고, 양당의 일각에서 통합운동이 일어났습니다. 90년 3당 합당으로 통합이 물 건너 간 후에도 영호남 정치권의 통합은 끊임없이 논의되고 시도 되었고,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를 규탄하는 언론과 국민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역사의 대의가 아니고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저는 ‘개혁과 통합’을 대표구호로 내세웠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4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정치생명을 걸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17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대승했습니다. 역사의 대의가 아니고 어찌 이런 결단을 할 수 있고, 어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선거 결과에 대해 탄핵이라는 돌발 변수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사람들의 결단은 정치생명을 건 역사적 결단이었습니다. 제가 창당을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결단을 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85년 2.12총선을 앞두고 한 신민당 창당 이래 없었던 결단이었고, ‘동원비 없이 치러진 전당대회’는 우리정치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만한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탄핵사건 이전부터 열린우리당의 지지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결단과 참여의 결과입니다. 탄핵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열린우리당의 창당이 성공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은 옳은 가정이 아닙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역사의 대의에 기초한 결단이었고, 우리 정치의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이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이 오랫동안 흔들리고 표류하더니 이제는 와해 직전의 상황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당을 깨고 나갔습니다. 남아 있는 대선 주자 한사람은 당을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한사람은 당의 경선참여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통합신당은 무슨 당입니까? 과연 지역당이 아니고 창당선언에서 다섯 번이나 강조했던 국민통합당이 맞습니까?

통합신당이 무슨 당이든, 당신들이 하는 대로 하면 과연 통합신당이 되기는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면 과연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열린우리당 창당의 정신에 맞는 일입니까?

2003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에서 당신들은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한 목소리로 창당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그 선언문은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는 말로 시작하여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페이지 정도의 내용에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국민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말이 다섯 번씩이나 나옵니다.

과연 당신들이 이 선언문을 낭독한 사람들이 맞습니까?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정치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구태정치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하여 당을 깨고 만들고, 지역을 가르고, 야합하고, 국회의 다수당이 되기 위하여 정계개편을 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이당 저당을 옮겨 다니던 구태정치의 고질병, 당신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국민들에게 청산을 약속했던 그 구태정치의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이 어려우면 당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원에 대한 도리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가망이 없을 것 같아서 노력할 가치도 없다 싶으면 그냥 당을 나가면 될 일입니다. 그러면 끝까지 창당정신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이라도 남아서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당을 깨려고 합니까? 당을 깨지 않고 남겨 두고 나가면 혹시라도 당이 살아서 당신들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서 두려운 것입니까?

설사 그렇더라도, 일부는 당을 박차고 나가서 바깥에 신당을 조직하고, 일부는 남아서 당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진로방해를 하면서 당을 깨려고 공작하는 것은 떳떳한 일이 아닙니다. 정치는 잔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분석과 수읽기, 거기서 나오는 잔꾀는 한계가 있습니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그런 것에 기대는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보고 대단한 전략가라고 말합니다. 무슨 치밀한 분석과 수읽기를 가지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은 그렇게 정치해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치는 양심의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도이고,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미 FTA를 추진하기 시작할 때, 참모들 중에는 몇 년 후에 있을 대선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타결이 된다면 대선이 치러지는 2007년에 타결이 될 텐데, 열린우리당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들이 떠나고, 내부가 분열되면서 대선에 최대의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그런 분석을 듣고 보니 대통령도 걱정이 됐습니다. 걱정이 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노심초사했습니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고 지지층이 떠난다고 할 때,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참모들에게도 내색은 못했지만, 속은 타들어갔습니다. 만일 대선 유불리를 놓고 복잡한 분석을 하고 수읽기를 했다면, 아마 적당한 명분을 찾아서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그런 식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더라도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면 국민을 믿고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의 복잡한 분석과 수읽기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정치인’ 노무현의 갈 길이 난감한 상황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은 정치인 노무현이 지난 20년 동안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일관되게 매진해 왔던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하도 간절하여 정치적 목표를 넘어서 삶의 가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무너지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대통령의 지지가 낮은 죄가 있어서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습니다. 당을 나간 사람들이 대통령의 실패를 말하고 당에 남은 일부 사람들이 또 당을 나갈 것이라 하여 황급히 당적을 버렸습니다. 책임있는 정치를 위해서는 임기 마지막 해에 대통령이 당적을 버리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지만 당을 위해서 소신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또 당을 해산하자고 하고 당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지난 20년 간 국민에게 약속해 온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이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좌절이자 절망입니다.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정도를 걷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정치를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에게 간곡히 충고 드립니다.

정치는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대의를 높이 받들고 원칙을 좇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길 수 있습니다.

가치와 노선에 따라 당을 같이 하는 것이고, 각 당은 그 가치와 노선에 맞는 후보를 내는 것입니다. 특히 대선에서는 당과 후보의 가치와 노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설사 가치와 노선이 맞아서 통합신당을 하더라도 당을 가지고 통합을 하는 것이지 당을 먼저 해산하고 통합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동서고금에 그런 통합을 본 일이 없습니다. 당을 해산하고 누구와 통합을 한다는 말입니까? 어느 당에 입당을 한다는 말입니까?

굳이 당을 해체하자는 것은, 희생양 하나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나는 모른다. 우리와는 관계없다’고 알리바이를 만들어 보자는 것 아닙니까? 스스로를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일입니다. 아무리 열린우리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낮다 해도 이런 식으로 정치하면 안 됩니다. 정말 당을 해체해야 할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열린우리당 해체는 곧 열린우리당의 존재 의미, 창당 정신, 그 역사가 훼손되고 정치적으로 좌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정치에서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의 맥이 좌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당적을 정리했지만, 우리 정치에서 통합주의의 맥이 끊기고 지난 20년 정치인생 내내 쌓아온 소중한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 때문에 통합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변명일 뿐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진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 둡니다.

저는 지역당과의 통합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혔고, 개인적으로는 당을 정비해서 가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중진들과 대화를 해보니, 당의 다수가 통합이 필요하다고 해 그 흐름을 존중했습니다.

지도부가 당의 공론을 모아서 질서 있게 추진하는 통합이라면, 어떤 통합이든 지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입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당적마저 정리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당명이나 형식을 고집하고, 이대로 사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통합을 하더라도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과 역사를 지키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든 통합이든,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은 제 생각과 다르게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결정하면, 그것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원칙입니다.

만일 제가 당원이라면, 제 의견과 다른 결정이 내려져도 그것이 규칙에 따른 정당한 결정이라면 결정된 바에 따라 당원의 도리를 다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을 통째로 이끌고 지역주의 정치에 투항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걸림돌이 될 일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년 총선을 위해 영남신당을 만들려고 한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대통령이 그래서 통합에 반대한다고 말을 만들어 내는 듯합니다.

한마디로 모함입니다. 대통령의 얘기를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발상은, 지난 20년 간 일관되게 고수해 온 ‘정치인 노무현’의 원칙이나 실제 정치행위와 배치되는 것입니다.

지역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정치를 망쳐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피해를 가장 처절하게 체험한 정치인이 노무현입니다. 아무리 정략적 모함을 하더라도 도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정치인 노무현이 살아온 정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모함은 그만두길 바랍니다.

지역주의는 나라 정치를 망칩니다. 지역 정치는 경쟁 없는 정치를 만듭니다. 경쟁이 없는 정치는 정치의 품질을 낮추고 정치를 부패하게 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공천헌금이 그 증거입니다.

지역정치는 호남의 소외를 고착시킬 것입니다. 호남-충청이 연합하면 이길 수 있다는 지역주의 연합론은 환상입니다. 상대가 분열하지 않는 한 호남-충청의 지역주의 연합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난 두 번의 선거를 정확하게 따져보면 분명해집니다. 현실의 승부에서도, 역사에서도 승리할 수 없는 길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의 정도입니다. 결국은 정도로 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국민들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선언문, 지금 읽어 보아도 감동이 있습니다.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결단, 희생과 헌신, 열정이 엉겨 있습니다. 인생을 바쳐 이루어 내야 할 가치가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할 도도한 역사가 있습니다.

2007년 5월 7일

이 글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으로서 쓴 글입니다.

끝없는 연결 고리와의 경주

사람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사람이 없고,

사업하기딜레마.

중심으로 가자니 비용이 들고,

주변으로 가자니 인프라가 없고,

반복되는 딜레마

누군가의 것을 또는 누군가의 기회 비용을 얻는 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잃는 것이 아니라 지불하는 비용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것이다.

재화의 유한함에 대한 등가의 법칙

어딘가의 시장 확대는 다른 곳의 축소를 의미

데이터와 경험의 조화를 꿈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추측과 무성의로 일을 꾸미기는 것도 서슴없이 한다

불완전한 결정

어리석은 열정

겁이없는 확신

과감하다고 생각되지만때로는 과격한 선택이

오히려 논리적으로 보이는 기이한 현상

그리고 종종 늘어놓는이런 구차한 변명

지금 어디에 있는 지...






Не унывай! Не унывай!
Сегодня у нас будет борщ ~
Не плачь, Давайте есть
Приятного аппетит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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