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봄
이상 기후에 더운 3월 말과 4월 초를 거쳐서 뜨거운 봄을 맞고 있다.
하늘은 드높고, 햇살은 쨍쨍.
사무실에서는 반팔을 입어야 더위에 헉헉 거리면서도 조금 참을 수 있을 정도다.
블라인드라도 창에 걸렸다면 그럭저럭 지낼만한 날씨이지만,
지금의 사무실에 블라인드를 칠 수 있게 하지도, 쳐주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척이나 뜨거운 봄이다.
바로 4월 말의 어지러움과 5월의 새로운 도전에 맞서서 몸부림쳐야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날씨만큼이나 더워져만 가는 수 많은 생각들과 경쟁들.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거리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만으로 이래저래 참아가고 있다.
실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의 간극이 있음을,
그 간극을 들어다보려는 의지가 있는 지, 혹은 없는 지도 알 수 없음은 무엇일까?
길게 보면 꽤나 오랫동안 걸어온 셈이고,
위험한 순간과 어려운 순간도 적지 않게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다가올 것들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더 새로운 것들이 펼처질 것만 같아서 두근두근하다.
'넌 참 무책임해!'
냉랭하게 울리는 말소리.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멀찍히 떨어진 삶을 들어다보고 '아,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사고는 부끄러운 것인가 되물어 본다.
갑자기 건물에서 걸어나가 눈 뜰수 없이 눈부신 햇살에 이런 저런 물음들을 던져보곤 한다.
좀처럼 알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사고의 조각들.
따각따각 게으름이 굴러간다.
도데체...노력은 언제 무엇을 위해서 해보았는지.
국민학교 때 꿈은 '과자 공장 사장 딸하고 결혼해서, 낮잠자면서 매일 같이 과자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자 공장 사장 딸이라고 여러가지 과자를 매일 먹는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중학교 때 꿈은 '대형 오락실(아케이드 센터 같은 곳)을 만들어서, 늦잠을 자면서 매일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형 오락실을 차리기에는 돈이 너무 없다는 것을 일찍 깨우치고, 열심히 오락실에서 게임하는 애들의 패턴을 익혀서 원코인 클리어 게임들을 늘려나가는데 집중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꿈은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전투기를 모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력은 마이너스 디옵터 5.0 이상이었고, 아쉽지만 월간 항공을 창간호부터 꼬박 꼬박 사보며 모으기로 하였었습니다.
대학교 때 꿈은 '세미 포르노를 찍는 프로덕션을 차려서 매일같이 영화를 찍으며 게으르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가 과인 만큼 함부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기가 힘들었고, 사회적으로 아직은 용인이 안되었기에 유호 프로덕션 류의 비디오 정도를 보는 것으로 끝내기로 하였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조교를 하면서...사회에 나올 즈음에 IMF 터지고 먹고 살기 바빴습니다.
지금은 뭘까 생각해보니...그저 사는 것...정도 일까 봅니다.
구로자와 선생이 '살아라'라고 할 때 감흥이 없었는데...그저 산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갈데까지 가보고 더 나이가 들면 '그 때는 뭘 하고 싶고, 뭐가 되고 싶었을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