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정도 뒤면 겨울이 오겠구나 한다.

일주일 전까지 더위에 땀을 어떻게 식혔는지 까먹을 만큼찬바람에 약간은 투툼한 외투를 꺼내 입고,

하루 하루 위기의 순간에 흥분하며 아침 하늘부터 저녁 하늘까지 두드리는 날들.

카레와 비빔밥을 동시에 만들어서 먹는 미묘한 주말을 보내고,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간다.

할 수 있는 요리들이 점차 늘어가는와중에 독자적인 레시피들은 쌓여가고,

국적 불명의 웃기는 짬뽕 메뉴를 내놓는한식당을 하나 차려도 될까 생각해 본다.

미지와의 조우가일상이기에 미확인 생명체들과 같이 어슬렁 거려보고,

새로 제작될 UFO의 성능에 관한 백서의 목차를 타박거리며 써본다.

"언론특권 해체 없인 민주주의 발전 못 이뤄"
"일방주장으로 공론기능 상실"…노 대통령, PD연합회 20주년 축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좀 격식 없이 말해도 괜찮겠죠. 여러분들도 조금 놀랐을 겁니다. PD모임에 대통령이 왜 왔을까.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여러분들의 모임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박해서 좀 놀랐습니다. 방송프로듀서들이 일하는 곳은 방송사이고, 방송사는 언론사이고, 언론사는 막강한 권력이 있어서 언론사 행사에 가보면 흔히 말하는 기라성 손님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이 자리에는 와보니까 여러분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하고 여러분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있습니다. 특별한 손님이 없어요. 제가 와서 좀 멋쩍어졌습니다.

의아스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느낌이 참 좋고요. 희망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이런 모습에 대해서 억지로 해석을 붙이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PD연합회라는 곳에 우리 한국사회에 희망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왜 왔냐, 궁금하시죠. 저는 PD연합회가 되게 센 줄 알고 왔습니다.(일동 웃음)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방송의 전 영역을 커버하고 있지요. 보도는 주로 사실 보도라는 국한된 범위이지만 여러분들은 보도 영역에도 관여하시고, 순수한 예술적인 창작의 영역에도 참여하시고, 대중들의 정서와 함께 하는 대중문화에도, 주로 대중문화에 제일 많이 참여하시죠.

그러니까 보기에 따라 영향력이 일반 보도만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그만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굉장히 큰 영향력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조언을 하나 해드리지요. 권력은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휘두르지 않으면 아무도 안 알아줍니다. 더러 좀 쓰세요.(일동 웃음) 쓰시면 아마 알아주는 사람도 많고 이런 모임에 여러분들이 굳이 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초청하면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PD연합회 출범한 87년은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시기

87년에 여러분 연합회가 탄생했습니다. 87년은 제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해입니다. 그해 6월 9일에 제가 부산에서 영장을 3번 청구해서 3번 기각되는 사건이 있으면서 조금 보도를 탔지요. 그 전에도 더러 나오곤 했는데, 그러니까 미디어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해입니다. 87년 6월 항쟁에는 저도 큰 감투를 맡아가지고 제법 했노라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경력이 있었고요. 오늘이 8월 31일이지요. 사실은 이때 제가 대우조선 사건으로 막 구속됐을 때입니다. 지금 해운대 경찰서에 있을 시기입니다. 그 뒤 11월에 변호사 자격 정지를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울고 싶은데 매 때렸다고, 안 그래도 누구나 국회의원 배지 달고 재는 것 보면 나보고 저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변호사 못하게 하니까 그거 한번 하면 좋겠다고 그렇게 해서 정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2월에 공천을 받고 정치에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87년은 제 인생에도 큰 전환기였습니다. 여러분들이 태어난 것과 같은 사회적 환경과 조건으로 태어났었지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역사적으로는 남남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지요. 이럴 때 박수한번 쳐주셔도 괜찮습니다.(일동 박수)

그렇지만 그냥 마음으로 축하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오늘 꼭 온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말할 자리가 없었어요.(일동 웃음) 기자간담회 한번 하겠다고 하면 비서실에서 ‘나가봤자 절대로 좋은 기사 안 나오니까 나가지 마세요, 당신이 뭐라고 얘기하든 얘기한 것은 몇 사람에게만 전달되고 그 다음에 나가는 기사는 전부 기자 마음에 달린 거니까 가급적이면 사건 만들지 마세요’ 그러니까 말할 자리가 없는 것이죠. 초청 좀 해주면 말을 좀 하겠는데 아무도 초청도 안 해요. 그런데 마침 여러분들이 제게 영상 메시지 하나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아마 20살 짜리 새로운 인생이니까, 동갑내기라고 축하 영상메시지라도 하나 보내달라고 해서…. 영상메시지보다는 실물이 안 좋겠습니까.(일동 웃음)

방송 영역에서, 언론 영역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언론하고 저하고의 인연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하고 같이 가거나 아니면 적어도 끝에 가면 맞닿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7년 이후 자유 택한 언론과 자유를 거부한 언론으로 나뉘어

제가 초등학교, 중등학교 다닐 때 제가 아는 신문은 오로지 동아일보 하나였는데, 독재와 맞서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진영읍에 동아일보 신문지국장을 무지 무지하게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언론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80년대 초부터 저도 소위 인권변호사, 노동변호사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 현실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언론이 왜 독재정권의 입노릇을 하고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만 하는지 그래도 저는 잘 몰랐습니다. 그 뒤에 제가 제 문제에 관해서 부닥쳐 보니까 거짓말이 너무 많아요. 사실과 다른 얘기, 이치가 맞지 않는 얘기를 너무 일방적으로 많이 해서 ‘아, 이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구나’ 이런 인식을 가지고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87년이 지나고 그 뒤로 가면서 많이 달라졌지요. 제가 막연하게 보기에는 언론이 마치 그 당시 우리 사회 큰 격동기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양쪽으로 편을 갈라가지고 한쪽은 아주 수가 많고 힘이 세고 한쪽은 힘이 적지만 편을 갈라서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87년 대선 때 특히 많이 그랬고 그 뒤로 가면서도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어떻든 그때는 언론이 자유롭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은 사람은 자유로워졌고, 자기가 선 자리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자유롭기를 거부한 언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그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편 언론 좋아 보이고 저하고 반대편 언론은 미워 보이고, 그 때부터 제가 반대편 언론하고 꾸준히 싸움을 했습니다. ‘확 긁어버린다’ ‘확 조져버리겠다’는 협박을 참 많이 당했고…. 저에게 해보고 안 되니까 당에 가서 ‘노무현 대변인의 소송을 취하시키지 않으면 당을 긁겠다, 시리즈로 긁겠다’고 하는 바람에 적이 됐지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편을 갈라 우리 편, 저편 대개 언론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 권력 편들기 넘어 ‘언론권력’으로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이 말년에 그들을 지지하는 언론으로부터 드디어 버림을 받고 몰락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권력의 대안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김영삼씨라는 새로운 권력의 대안을 선택하고 노태우 대통령을 무력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봤습니다. 그리고 문민정부 말년에 가니까 또 새로운 권력의 대안과 손잡고 김영삼 정권을 가차 없이 침몰시켜 버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권력 내에서 말하자면 제1당의 지위를 무력화시켜버린 것이죠. 그런 모습을 봤습니다. 그러면서 ‘아, 언론은 권력이다. 그들이 어느 권력에 편드는 권력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이미 권력이구나’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여할 만한 역량이 되지 않아서…. 언론개혁안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습니다만 예를 들면 소유에 대한 규제, 편집권 독립에 관한 문제, 그리고 언론의 편중의 문제 이런 것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느냐 이 문제만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제가 대통령에 당선돼 버렸습니다. 인수위를 운영하는 기간 동안에 니편 내편 할 것 없이 새로운 갈등이 생겼습니다. 뭐냐 하면, 저는 아직 들어보지도 않고 아무 결정도 하지 않았는데 신문을 보면 전부 새로 들어설 정부 인수위가 이런 정책도 결정하고 저런 정책도 결정하고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정책을 결정한 것만 아니라 그 정책에 대한 비판기사 또한 따라 나옵니다. 조금 있다가 그거 아니라고 얘기하면 오리발이라고 또 비판합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여러분 아시듯이 청와대에서 기획할 때도 있고,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여러분들이 언론사에서 만드는 많은 기사 하나하나가 정책의 단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면 실무자가 정책을 기획하고 그 다음 상급자와 협의하고 그 다음 부서 안에서 소위 연구과제로 채택되면 그 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관계되는 부서하고 다시 조정을 해야 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어느 정도 조율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에 대해 많은 조사 분석을 해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사하고 분석하니까 그 기간에 사실들이 전부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실무자 차원에서 정책 기안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을 뿐이지 그 부처의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은 정책, 더욱이 부처 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정책, 심하면 총리실이나 청와대의 승낙을 받아야 될 정책까지 일개 과장 수준, 사무관 수준에서 전부 정책이 돼가지고 마구 나와 버립니다.

더욱이 인수위에 있는 사람 가운데 공직경험이 없는 사람은 잘 모르니까 묻는 대로 그냥 한마디 해버리면 그날 대문짝하게 나옵니다. ‘칸을 미리 비워 놓고 무조건 인수위 기사로 다 채우라는 명령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럽니다. 그동안 문서까지 사라져 버리고요. 수월하게 말하겠습니다. 도둑맞았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기획 문서인데 도둑맞았으니까…. 그래서 정부 조직의 기능을 보호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정부 조직의 기능을 유지해 갈 수 없다, 지금도 엇박자 계속 나오지요. 엇박자 기사 항상 나옵니다. 아직까지 다 익지 않은 정책에 대해서 물으면 공무원들 자기 생각대로 불쑥 얘기해 버리고, 전혀 훈련이 안 되어있어요.

정부기능 유지 위해 특권해체 단행…언론도 예외두지 않아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참여정부가 처음 시작한 것이 첫째,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검찰도 제 측근을 임명하지 않고 그 안에서 가장 신망 있다는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선 검사들과 토론까지 했는데 좀 흉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어떻든 그들에게 특권을 주지 않고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소위 특권과 유착의 구조가 제게 큰 과제였지요. 그래서 검찰, 국정원, 국세청, 경찰 전부 각기 자기 일들을 하게하고 그들의 특별한 도움, 말하자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체의 도움을 내가 받지 않는 대신에 그들도 가외의 권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고 잘못이 있어도 비호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불법적인 명령이 아니라 청탁을 해서 그 사람들이 나를 위해 불법적인 일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의 오류, 과오가 발견됐을 때도 제가 징계할 수가 없지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공생관계를 청산했습니다.

그 다음이 언론 차례입니다. 언론들이 사실은 제가 보기에 상당히 막강한 특권들을 누리고 있더라는 것이죠. 심지어 인사에 대해서도 발언할 만큼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근거가 되는 제도들 몇 가지를 끊어버린 것이죠. 그 때 기자실을 폐지시켰습니다. 그런데 다 폐지된 줄 있었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까 아직 그루터기가 남아 있어요. 옛날 우리 어려서 고구마 농사지을 때 고구마를 다 캔 것 같은데 비오고 난 뒤에 보면 고구마가 순이 올라와요. 고구마가 이삭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처럼 남아 있어요. 무덤가에 아카시아가 자꾸 들어오면 골치 아프거든요. 아무리 잘라도 자꾸 들어와요, 뿌리가 남아있어 가지고…. 그렇게 기자실이 남아 있어요.

가판 끊고 그 다음에 일체 접대하지 마라, 그래서 ‘술밥 먹고’ 이렇게 말했다가 기자들이 ‘우리가 술밥 얻어먹고 다니는 사람인줄 아냐’고 또 막 화를 내니까 ‘아, 내가 말을 심하게 했구나. 표현을 좀 다르게 해야 되는데’ 그러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 일체 금지시키고 그런 일이 있을 때 징계하겠다고 엄포 놓고…. 눈이 많지 않아서 완전히 근절이야 했겠습니까만, 가판, 기자실, 그 다음에 사무실 무단출입을 막았습니다. 세계에 그런 일이 없다고 해서, 또 그건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전에 취재할 때 원칙적으로 공보실을 통해 취재하도록 했습니다. 또 공직자가 기자들과 대담·인터뷰를 할 때는 반드시 정부의 정책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말하자면 연관된 정책에 대해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대변인실과 상의해라, 공보실과 협의해라, 그런 것이 사전승인 되는 것이죠. 승인 받아라. 그 때부터 이제 참여정부는 언론 탄압하는 정부가 된 것이죠. 여기까지 왔습니다.

반론과 공론기능 외면한 채 ‘언론탄압 정부’로 몰아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도 주장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저도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 정당성을 뒷받침 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국정브리핑에 잔뜩 올려놨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문 방송들은 전혀 쓰지도 않고 읽지도 않습니다. 정당하냐. 언론이 개인의 사유재산이냐 공공의 재산이냐, 공공재냐 개인재냐. 공공재라고하면 어떤 공공재냐. 그 사회의 공론이 다 표출되게 하고 공무원 사이에 토론과 설득과 납득, 양보와 타협 이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근거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죠. 경기를 운영해 줘야하는 것입니다. 경기위원회로서 선수들이 뛸 수 있도록 경기를 운영하는 겁니다.

자기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는 어떻게 하냐, 그래도 그 공론의 장에 모두를 다 올려놓고 공정하게 뛰게 해줘야 합니다. 그럼 노무현 하고 싶은 얘기도 실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전 세계에서 기자실을 운영을 하고 있는 나라가 과연 몇 개국이나 되며, 그 기자실에 대한 선진국 기자들의 평가는 어떻게 나와 있으며, 사무실 출입에 대한 원칙은 어떻게 돼 있으며, 기자가 공무원을 인터뷰하려고 할 때 거치는 절차가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주장하는 문제에 대해서 같이 내놓고 같이 갑론을박하고 이해 관계가 없는 제3자 그리고 이 사회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판단하게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전혀 안 합니다. 그들의 사유물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 가서라도 이 말을 해야겠는데 말할 데가 없습니다. 이 말이 보도가 될까요.(일동 박수)

그리고 대한민국, 아이들을 안 낳습니다. 아이를 더 낳게 하려고 저출산고령화시대를 대비한 자녀교육, 자녀양육에 관한 정책 합의를 하고 왔습니다. 연대회의를 만들어 가지고서 합의하고 왔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아이를 낳을 거 아닙니까? 보육하기 좋게 하고 교육하게 좋게 하고 취직걱정도 덜고 노후걱정도 적게 해줘야 아이를 낳을 것 아닙니까? 총체적으로 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장래가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있어야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전망이 있을 것인가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성공할 것인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죠. 좀 더 가까이 실감나게 알기 위해서는 일류사회로서 미래가 있는가 하는 데까지 전망을 해봐야 될 것입니다.

언론의 기능과 수준은 나라 미래와 직결된 문제

나라의 미래가 있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언론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나라의 미래가 있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있습니다. 경쟁에서 낙오하면, 국가가 낙오하면 미래가 없을 것입니다. 경쟁이 인간의 행복을 오히려 황폐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많은 문제제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 현실을 우리가 거역하지 못할 것입니다. 살아서 숨 쉬는 한 거역할 수 없는 것이 경쟁의 환경입니다. 그래서 국가도, 개인도 경쟁하서 이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개방과 민영화만이, 또는 작은 정부 이런 것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아이 낳아서 기르는 데서부터 노인들의 생활에 대한 안정과 만족감까지가 총체적으로 국가경쟁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회투자론, 사회국가 투자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것 맞습니다.

어떻든 경쟁력이라는 프레임으로 우리가 얘기하는 것인데 그러나 경쟁력만 있는 국가가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한계선 이하로 낙오하지 않아야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막가파, 지존파가 나오지 않는 사회라야 그 사회에 더불어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사회 갈등과 대립, 분열을 우리가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통합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합의해서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당히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나 군대 가기 싫다.’ 존중하되 그러나 그것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대세는 되지 않도록 그 자유는 아주 예외적인 자유가 되도록 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세금 내기 싫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합의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합의해야 되는 부분에 합의가 이루어 질 수 있을 때, 우리가 크게 말해서 공동체를 이대로 가지고 가자,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각자 개인의, 공동체의 목적을 함께 살려보자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함께 꾸려가면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 그리고 꿈을 살려보자, 이 전제는 어떤 사회에서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통합이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임금이 강제로 통합을 했습니다. 전제권력을 통해서 강제로 지배함으로써 국민들을 통합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사회의 행복의 균형이 너무 심하게 깨졌을 때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왕조가 망했고, 새 왕조가 들어서는 것을 반복하다가 드디어는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변혁이 일어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회적 균형이라는 것은 객관적 조건입니다. 주관적으로 차이와 불균형을 얼마만큼 우리가 용인하고 그것을 수용할 것이냐. 공동체 안에서는 불균형이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봐서 나한테 이익이다, 내가 혼자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는 이익이라고 판단할 것인가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놓고 어떤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억압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이 정도는 당연한 통제라고 생각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 공동체를 유지해 가려고 하는 사람은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또 공동체 운영을 위해서 필요 권력을 창출해 놓으면 권력이 사유화 되어서 그 안에서 자기가 특권을 누리기 위해 또 이데올로기를 만들고요.

우리 공동체의 이데올로기에는 반드시 필수 불가결한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 권력을 누리는 사람이, 절대적 진리에 대한 해석 권한을 가진 사람이-진리가 있는 지는 모르지만-지휘, 명령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 넣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죠. 면죄부를 판 것도 거기에 해당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규칙을 만들어 오던 것도 드디어 인간의 이성이 눈뜨기 시작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무너지고 민주주의 사회가 된 것입니다.

사실과 공론 통한 통합과 합의 누가 이끌어야 하나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러면 이건 어떻게 하냐’ 이거죠. 여기에서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 아마 이 자리에 프로그램을 만든 분도 계실 수도 있겠지만, FTA를 놓고 저와 의견이 많이 달랐습니다. 저도 거기에 대해서 <국정브리핑>에 반박문을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견이 다르단 말이죠. 어떻게 할 거냐. 다행히 FTA에 대해서는 결론이 어떻든 간에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 토론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것은 많이 걸러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을 걸러내는데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정력을 소비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지만 그런 토론을 거쳐 점차점차 수렴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합의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첫째로 정확한 사실, 사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것, 반드시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할 것, 두 번째로 공정하게 토론의 기회를 줄 것. 토론해야 합니다.

토론하고도 결론이 안날 수가 있지만 그리고 나서는 제3의 사람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충분한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로서 마지막에는 표결하는 것입니다. 공론조사라는 방법도 더러 쓰고 있습니다만, 표결하는 것입니다. 이 규칙을 우리가 존중해 가는 것입니다. 틀렸을 때에는 몇 년 뒤에 다시 바꾸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다시 바꿀 수 있게 되어 있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견제의 매커니즘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기입니다. 선거를 다시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시 고쳐갈 수 있고, 이 작동이 제대로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그 나라 언론, 소위 사회적 재산으로서, 공공의 자산으로서 언론의 역할입니다. 이것이 떨어지면 그 사회는 통합할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또 하나, 언론은 커다란 권력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영국의 토니블레어 총리가 10년 임기를 끝내고 나와서 어떤 언론사가 운영하는 연구소에 가서 ‘지금까지 다 알지만 그러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공공에 자기 얼굴을 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차마, 감히 말하지 못했던 진실 하나를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감히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얘기해 놓고 ‘언론이 선정적으로 쓴다, 책임 없이 쓴다’ 이 말을 했습니다. 근데 그 분의 얘기 속에서 언론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언론이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영삼 대통령도 막판에 자기를 좋아하는 언론에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그런 언론은 처음부터 별로였고, 어떻든 그렇게 이젠 타협하기 어려운 갈등 관계를 저한테 넘겨줬습니다.

정확하고 공정한 정론의 장 없인 미래도 없어

저는 소신대로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소위 개혁을 하려고 했고, 서로 공생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니까 옛날에는 편을 갈라서 싸우던 언론이 저한테 대해서는 전체가 다 적이 돼버렸어요. 매우 중요한 얘기입니다. 저를 그래도 편들어 주던 소위 진보적 언론이라고 하는 언론도 일색으로 저를 공격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게 지금 이 싸움이고요.

그래서 요즘 깜도 안 되는 의혹이 많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과오는 부풀리고, 그런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으려면 정확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정론의 장이 있어야 되고,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책임을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선진국 정도로 가면 되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이라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국민이 선택하는 정치입니다. 국민이 선택할 때 어떤 정책이나 사람, 이 선택과 자기의 이해관계, 그것도 1차적으로 생각하는 이해관계의 인과 관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세론이 있지요. 세금을 깎았을 때 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떤 프로세스, 어떤 인과 관계를 통해서 나에게 어떤 손해가 오고, 어떤 이익이 올 것이라는 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선택다운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하지만 이것들을 우리가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FTA가 실질적으로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서 어떤 이익이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해서 이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FTA에 대해 표결하는 사람들이 정확한 표결을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언론과 노무현 정권이 지금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가 뭐냐, 나중에 우리의 이해관계에 어떻게 결부될 것이냐 하는 데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의사 집단이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집단 휴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좀 빠르지 않느냐는 것이죠. 시범사업하자고 했거든요. 이론적 논쟁, 논리적 검증만으로는 검증이 어려우니까 실제로 시범해 보고 나타나는 결과를 가지고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토론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현실적 검증을, 시뮬레이션 자체를 거절하는 것은 토론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국민들이, 소비자들이 그것이 나하고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누가 말해 줍니까? 제가 말해주고 싶은데 제 말이 전달이 안 됩니다. 비전 2030이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전달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가지고 있는 매체가 있습니다. <국정브리핑>, <청와대브리핑>, 열심히 하는데 많이 안 본데요. 재미가 없나 봅니다. 그러나 이전에 없던 무기입니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으니까 마구 거짓말 쓰는 사람이 얼마나 가슴 찔리겠습니까? 저는 양심과 용기, 그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인과관계에 대한 국민이해 돕는 게 언론

그래서 이 복잡한 인과관계를 누가 이해할 것인가. 저는 언론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정책을 잘 선전해 달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 하나하나가 갖는 이해관계, 아프간 문제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국민의 생명이라는 소중한 가치와 국가 위신이라고 하는 가치가 충돌합니다. 과연 오늘날 테러집단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판단인지는 저는 아직 단언하지 못합니다만 그러나 세계적 대세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국가의 위신이라는 것은 대세를 거역했을 때 생기는 현실적 위신을 말하는 것이지 도덕적 의미에 있어서의 판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 의미에서 국가 위신이 아니라 현실적 의미에서 전 세계의 대세를 거역했을 때 느끼는 외교상의 부담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토론과 갈등을 겪어 나왔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했지만 이 안엔 아주 많은 그런 인식 차를 조율하면서, 최종적으로 그 결판을 내라고 대통령을 뽑아준 거니까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젠 일이 지났으니까 새로이 복귀하면서 ‘이런 점도 있다, 저런 점도 있다’ 어떤 평가든 좋습니다만 그러나 ‘선택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항상 전제로 하고 균형 있게 얘기해주면 좋겠는데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이것도 일방적으로 비판한다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정치에서 일어나는 일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적어도 나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선 이해관계에 대한 인과관계를 알게 해주자. 그것은 사실과 정론과 토론이다, 다시 거듭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런 모두를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죽 들어가 보면 하나 법칙이 나옵니다. 인과관계를 따라가고 따라가고 따라가 보면 마지막에 초등학교 때나 중등학교 때 배웠던 도덕적 명제와 일치하는 점을 굉장히 많이 만납니다. 정직해라. 왜 정직해야 되는가. 정직해야지만 궁극적으로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고 그 안에서 나도 최대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그 공식이, 분석해서 설명하면 몇 시간이 걸려 설명을 해야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초등학교 때 그냥 딱 한마디로 정직해라 이렇게 배웠듯이 도덕적 명제를 가지고 가야 됩니다.

사실과 정론과 토론의 기본은 정직…원칙과 대의 찾아야

요즘 정치 한번 보십시오. 가관입니다. 그렇잖아요? 김영삼 대통령의 3당합당을 틀린 것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그쪽에서 나와 가지고 이쪽 당으로-(저에게는) 우리당 없습니다. 범여권에서 하니까 나와 가까운가 생각되는데-범여권으로 넘어온 사람한테 가서 줄서 가지고 부채질하느라고 아주 바빠요. 왜 YS는 건너가면 안 되고 그 사람은 건너와도 괜찮냐, 이거죠. 사회가 대단히 발전한 것 같지만 아직 초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이만큼 왔다고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많은 문제에 대해서 아직까지 양보와 타협을 해나갈 수 있는 수준이 안 되고 보다 더 가까이 그 진실을 명석하게 하는 그런 토론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이고, 주먹부터 먼저 내미는 사회지 않습니까?

정치에서 무슨 원칙이 있습니까? 오늘의 언론에서 무슨 대의가 있습니까?

오늘 제가 이렇게 복잡한 말씀을 드렸는데 이 복잡한 얘기는, 기자들은 쓸 수가 없습니다. 복잡한 인과관계라든지 이런 것들을 기자들은 쓸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PD라야 이 긴 얘기를 담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가 하는 과제는 여러분의 손에 크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오늘도 많은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지만 이 수준을 높이 끌어올리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기자협회장도 와 계시지만 앞으로 기자들 오라면 이제는 안 갑니다.( 일동 웃음) 안가고 PD가 오라고 하면 갑니다. 행세하지 않지만, 이익을 취하진 않지만 여러분에게는 권력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권력이 있습니다. 제가 검찰도 내 손아귀에서 움직이지 않고, 부당한 명령 하나 받을 검찰이 없고 모든 권력을 손에서 놨지만 그러나 그동안의 이전 정권들이 풀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 다 해결 했습니다. 엄청난 갈등 과제들도 다 해결했습니다. 얼마나 자신만만하면 기자 집단하고 맞서겠습니까? 권력이라는 것은 행세하는 것만이 권력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루어 나가는 영향력과 힘, 그것이 권력 아니겠습니까? 지금 전 언론사들이 무슨 성명내고 국제언론인협회(IPI)까지 동원하고 난리를 부리는데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제 임기까지 가는데 아무 지장 없을 것입니다. 요것만 (나올지 모르겠네.) (일동 웃음)

그래서 여러분들 권력은 크게 표가 나지 않더라도 권력은 권력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합니다. 김대중 5년, 노무현 5년이 우리의 기회를 다 잃어버렸다는 것이죠. 잃어버렸습니까? 뭘 잃어버렸습니까? 97년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뭐죠? 98년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뭐죠? 여러분을 덮쳐눌렀던 98년의 상황은 뭡니까? 왜 왔죠? 독재가 만들어 놓은 부작용들입니다. 독재는 우리에게 사회적 불균형이라는 커다란 부담을 넘겨줬잖습니까. 그래서 통합하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어 놨고, 부글부글 끓는 사회를 만들어 놓은 것이죠. 불신사회를 만들어 놨지 않습니까. 돈은 얼마 좀 천천히 벌면 어떻습니까. 불신으로 사회를 붕괴시켜 놓았습니다. 권력이 불신 받는 사회가 됐습니다. 아무도 신뢰받는 데가 없습니다. 불신사회를 만들어 놓고 대화가 안 되는 사회를 만들어 놨지 않습니까. 죽기 살기로 싸운 사람들의 경력이 있으니까 어렵지요.

진실 외면하는 중계방송으론 민주주의 발전 못 이뤄

이렇게 말하는 저 또한 그럴 수가 있습니다. 저 또한 타협하는데 부적절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내가 대통령 후보 나가 있는 누구보고 ‘아마 당신은 그것은 나보다 훨씬 잘 할 것이요. 사람들을 포섭하고 남의 얘기를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고 그것만이 아니고 다 잘하지만 확실하게 그 점에 있어서 나보다 있을 것’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저도 각박한 사람이 됐지요. 본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시대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많은 숙제들을 잔뜩 넘겨줘 놓고 자기들은 잘했다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니까요. 그때와 비교해보자. 그래서 지표로 말합시다,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하자는 것이죠.

한마디 더 하면, 자기들이 했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건 언론 책임 아닙니다. 그런데 받아만 쓰니까 열 받아서 그러는 것이죠. 그것이 진실인가, 한번 찾아볼 일 아닙니까? 무슨 무슨 의혹이 있다 그러는데 ‘카더라’만 방송했지 서로 싸우고 있는 진실이 어느 것인지는 아마 역량이 없어 못 들어가 보는 모양인데, 추구하지를 않습니다. 대개 일부 언론들은 빨리 덮어라 덮어라 하고 있는 것 같지요. 저희는 일개 공기업 사장 한사람 하는데도 옛날에 음주운전 했다고 자르고 뭐 했다고 자르고, 안 자르고는 견딜 방법이 없어서 잘랐습니다. 제가 무슨 천하에 투명하고 깨끗한 사람이 아니고, 저 혼자 깨끗해서 자른 사람이 아니고 통과가 안 됩니다. 음주운전 하나만 있어도, 옛날에 부동산 상가 하나만 있어도 그리고 무슨 위장전입 한 건만 있어도 도저히 장관이 안 되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요즘 언론들은 팔짱끼고 앉아서 또 싸움나면 중계방송하겠죠. 이런 수준을 우리가 넘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민주주의 못갑니다.

저는 여기 와서 여러분께 간곡히 제가 희망을 건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잘 부탁합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20년 전 여러분들이 부끄러움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지고 뭉쳤었을 때 그때 심정으로 다시 돌아가 보길 바랍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고 지배와 소외의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도 잘사는 집 아이와 그렇지 않은 집, 지방 사람과 서울 사람들 사이에 아이들의 학력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제가 5년 동안 그 문제 해결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만, 우리가 그 때만 눈을 부릅떠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기에도 우리가 또 다짐하고 다짐해야 할 많은 사명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원문 - http://www.president.go.kr/cwd/kr/archive/archive_view.php?meta_id=hot_material&id=1c144770d6ed2e78d66aa78


사람들은 말이다...청렴결백한 사람들을 원한다고 하면서, 자신과의 이권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여러가지 변명들을 하곤 한다. 언론이 바로 서지 못한 것은 단지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이권을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용인하여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다.

자신의 과오가 함께 뭍어 있다고, 되돌릴 수 없다고 커다란 사회적 부조리를 거짓말로 묻어두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그만두자. 지금 챙피당하지 않으면 당신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겠는가?

좋은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법이다.

남들이 이제와서 왜 이런 기기를 구입하냐고 하겠지만...우연찮은 기회로 GP2X를 구하게 되었다.


에뮬머신 혹은 간단한 동영상, 이북 용도 정도로나 생각되던 이 녀석을 구입하고 나서 보니...꽤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구입하기 전에 크래들 포함한 사진과 크래들의 뒷 면을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정작 제품 홈페이지에도 없고 해서 피식 웃었는데...막상보니...다시 피식한다.

또 기기가 뽀사질 때까지 부려 먹는 거다.

하긴 기기가 뽀사질 때까지 부려 먹은 건...투명 보라의 GBC 밖에 없기는 하지만.

뭐 그런 거지.


1) 지폐인 - http://www.gpain.org/

한 동안 기기를 건드리지 않았더니, 지폐인에 SDHC SD를 지원하는 커스텀 펌과 정식 펌이 모두 올라왔다.
이제 이 구형 기기에서도 4기가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활용도가 떨어져 버려서...그 사이에 WiZ라는 녀석도 나오고 뭔가 새로운 버전이 계속 나오기는 한다.

대학 다닐 때 조셉 보그스의 '영화 보기와 영화 읽기'라는 책이 나왔다.

당시 학교 도서관의 영화 관련 서적이란 한 쪽 책장 서 너 줄에 사진 관련 책과 함께 백 여권도 채 안되는 분량이었고, 새로 번역되거나 출판되는 책도 바로 사서 읽을 정도였으니...당시에 출판된 영화 관련 서적은 대부분 읽었다고 생각한다.

그 책의 내용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용 하나는 기억 난다.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를 읽는 것.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영화에 엄청난 관심과 이에 대한 산업으로의 사고가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나오기 시작한 씨네21, 키노들이 스크린과 로드쇼의 뒤를 이어갔고,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서 읽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영화를 이야기 하자.

일반인들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이제는 감독이 어떻게 그 장면을 이끌어 냈는 지를 토론하고, 스타일과 작가주의를 이야기했고 서사적 구조와 영화 속에 숨겨진메타포를 이야기했다. 편집과 사운드를 논하고 다들 20자 평을 쓰면서 드래곤 라자의 시니컬한 주인공처럼 토론을 하기도 했다.

영화는 해체의 시대일까?

정보의 과잉과 토론의 범람이 미디어와 인터넷이 가져다 준 선물인 것인가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언제부터 완성된(불완전하든 완전하든) 결과물의 구조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컨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한 것일까? 감상이라는 옷을 입고 해체된 각 부분들에 대한 논평을 늘어놓게 된 것일까?

나의 아픔은 구워진 빵의 맛을 음미하기 전에 그 밀가루와 이스트와 반죽을 논하며 빵을 먹는 이들을 보는 것이다. 그저 나에게는 '멋진 맛이거나 혹은 반죽이덜된 빵'일 뿐이다. 컨텐츠를 논쟁으로 소비하는 것은 평론가에게 역할을 주어도 될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 글쓰기가 바뀌었군...억지 춘향...오늘의 일을 끝내다.

할 말은 많지만...도데체...

종종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다.

며칠간 무지하게 덥더니 퇴근 시간이 다되어 검어진 하늘 사이로 천둥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은 원래 그림을 그리면 안될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다.

그리고, 엄마가 부쳐주는 김치, 부추부침개나 빈대떡을 먹으면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 진다.

성근이의 노력으로 우연찮게 만났고, 요즘은 만화를 안그리냐고 묻는다. 만화...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그려본 적이 없다. 사실 요즘 만화체와도 많이 다르고, 개인적인 만족보다는 굳어진 손과 손가락을 느낄 뿐이다.

엄마는 내가 집 안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부엌의 한 쪽 벽면의 도배지를 뜯고하얀색 페인트로 칠해 주시기도 했다. 나는 그저 내 마음대로 그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된다.

하지만, 지금 하얀 종이를 꺼내 쓱싹 그리기 시작하면 실망할 거다.

현재의 내가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리면서 다른 이들의 그림들과 비교하여 우울해질거기 때문에, 그려낸 것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게 될 거기 때문에 실망할 거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랑곳없이 그림을 그려댔는데...뭘 모르는 것도 좋은 일이고, 뭘 모르는 채 계속 길을 가보는 것도 좋은 일인 듯.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나이가 들면 사람은 이것저것 따지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한다.


벽을 보면서 이야기 하던 시절 - 2

내 별명은 '청개구리'였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혹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반드시 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 늘 들었고, 거의 대부분 행동했다. 누군가가 이것이 좋다고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정말 좋은건가?' 였고, 다수 사람들이 정말 좋다고 하면 '그럼 난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을 해야 겠다'고 결심해 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좋은 것, 좋은 일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왜 나까지 좋은 자리, 좋은 물건, 좋은 조건을 모두 따라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내 머릿속을 이단 옆차기해왔다.

그렇게 좋은 것은 내가 아니어도 모두가 원한다. 걸맞은 사람, 더 원하는 사람이 그 좋은 것과 좋은 사람을 만나길. 어쩌면 너무 삐딱하게 굴었는 지도 모른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다들 그것을 원하니 나까지 경쟁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투쟁심이 저멀리 사라지는 것이다.

어려서 부터 그래왔던 덕분인지 어머니나 누나들은 무엇을 해라, 하지 말아라 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아무 말도 안하고 끙끙댈 수만은 없는 노릇.

어머니는 어느 선을 넘어서 참기가 힘들어지면 폭풍우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서 '그런걸까?'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보통사람의 일상에 어울리는 혹은 일반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삶을 산다라는 것에 대한 억지스러운 거부감이 드는 것이었다.

한 때는 '겁을 내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거부한다는 것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한 요소들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난 가진 것도 없으면서 무척 거만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자신으로 똘똘 뭉쳐있는 녀석이었다.

이런 이중성과 일상에서의 청개구리 성향이 나를 사람들과 차별화하는 방식을 다른 형태로 만들어오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은 타인과의 삶의 질을 비교하고 나누면서 차별화하고 살아가지만, 나는 스스로가 그저 다른 길을 가면서 혼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벽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난 벽과 이야기하듯 공상과 상상에 장시간 동안 잠기는 선까지 드디어 해낸 것이다. 대화의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벽을 마주한 채 이렇게 강렬한 상념을 끄집어 내어 발산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그 가능성을 대학 시절 3개월간의 금언과 침묵 속에서 찾아내었고, 드디어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 어느 선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주저 앉으면 연락이 안되는 나를 찾기 위해서 어머니는 열심히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우리 아들이 xxx명단에 있는 지 한 번 봐주시오.'

가족들이 안절부절하는 가운데, 사고 하루 이틀이 지나서 천연덕스럽게 집에 들어가서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낼름 잠자리에 들곤 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든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저 이 마음대로 며칠씩 집을 비우는 녀석의 숙면을 용인해 주는 것이다.

길에 누워서 혹은 벤치에 누워서 별이 뜬 하늘을 보며 잠드는 것과는 다르게 집의 바닥은 포근하다.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면서도 천장의 흔들거림을 느끼며 다시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미니 기기들이 많아지다보니...이에 따른 부가적인 메모리 카드의 종류 및 숫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뭐, 메모리를 예전 플로피 정도로 생각해서 쓰고 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에게 그다지 좋은 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용량은 점차 중요해지는 듯 하다.
가장 처음 구입했던 128M CF메모리부터 최근에 구입한 샌디스크 메모리 스틱까지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어 봤다.
구입 가격을 놓고보면...웃기는 것이 128M CF가 가장 높다는 것.(그 다음은 샌디스크의 메모리 스틱 4G)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사라질 녀석들이지만, 내 미니 기기들의 각종 데이터들을 담고 있으니 사용이 가능한 동안은 계속 열심히 일해주길 바란다.
항상 제일 싼 녀석들만 사서 그런 지 회사가 같은 녀석이 하나 밖에 없구나...
아무튼 다들 미니 기기들에 들어가서 잘 작동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사실 리듬 게임은 젬병이다.
몸치, 박자치, 음치라서... 처음 스테이도 쩔쩔매다가 어찌어찌 게임을 플레이하기는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타이밍 암기를 무지 잘하고 적응력이 빠르다는점이어느 순간부터는쉽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요런 재능으로 오락실 슈팅 게임의 대부분을 원코인 클리어까지 가는 기염을 토하게 해주었었다. 어디서 어떤 기체가 어느 시점에 나오는 지, 난이도를 1~7 사이 중 어디로 세팅이 되었는 지 남이 하는 걸 쪼끔 지켜보면서 타이밍 암기를 해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은 기체의 출현 장소와 난이도에 따른 속도 및 탄환 수가 정해져 있어서...그걸 마지막 판까지 익히면 손쉽게 엔딩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암기를 통해서 어찌 초보자 스테이지들은 숨겨진 음악들도 꺼내고, 대략대부분의 곡을 B이상으로 클리어를 해버렸다.(타이밍을 알아도 몸이 안따른다)이제 6버튼과 8버튼에 도전할 차례.
원래는 리듬에 맞춰서 감각적으로 타이밍을을 맞추는 게임인데...암기 게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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