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계단을 걸어내려오면서 가서 해야할 일, 그리고 사야할 목록을 생각해봤다.


몇 가지 안되는 것들이지만 자꾸 되뇌다보니 내가 뭔가 하나를 빠트리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건물의 현관을 벗어나서 이미 어두워진 아스팔트를 걷다보니 무거워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발을 힘들게 내딛으며 지구의 중력과 몸이 앞으로 향하는 관성에 이끌려 걷고 있는 나를 느꼈다.


'뭐, 괜찮을 거야.'


막연하게 중얼거리는 것에 대한 확신이나 증거는 없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간의 시간 혹은 희미해진 기억,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지나온 과거가 아주 작은 불빛마냥 타고 있는 것 같다.


살아있는 나는 바로 앞의 비춰진 길의 한 걸음까지만 볼 수 있는 자그맣고 희미한 빛이다.


시간이 빚은 작고 흔들리는 희미한 빛.



붉은 벽돌로된 담을 걷다가 라일락 향기에 잠시 고개를 들어본다.


어두운 밤 하늘을 배경으로 담벼락 너머의 하얗게만 보이는 작은 꽃들이 모여 진한 향기를 뿜어대고 있다.


너무 가까이가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렬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몇 걸음 떨어져 있으면 은은하게 향을 맡을 수 있다.


거리가 주는 향의 깊이, 강렬함, 화사함.


사람없는 골목에서 행여 내 작은 불빛에 향기 담길까 싶어서 담을 살짝 넘어온 라일락 나무 아래 서서 나무를 올려 본다.


4월의 라일락이 핀 담 아래서 그렇게 흔들리고 있다.


양손을 포갠 뒤 그 위로 턱을 괸 채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게 생각나.

깊게 잠든 모습을 보고 그냥 아침에 출근해버린 게 아쉽다.

머리라도 한 번 더 쓰다듬어 줄 걸...



아침에 일어나면서 시작되는 하루의 일과는 언제나 바쁘다.


살아온 시간은 적다면 적고, 움직였던 영역도 제한적이지만 

그간의 경험은 '실제로 바쁜 일은 그다지 없어' 라고 말한다.


바쁜 일도 없고, 느릿느릿하기만 한 하루의 연속.


하지만 시간은 잘 흐른다.


그저 잘 흐른다.


순간은 너무 길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너무 빠르게 잘 흐른다.


하루 이틀, 일 년 이 년,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면서

지금을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상과 공상 만큼 지금의 나를 망각하게 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절한 공상은 일상의 지겨움과 공포를 털어내주곤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지금의 나는 꽤나 바쁘다.


오늘의 일상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데

자꾸만 나는 바빠진다.



일상의 반복이 지겨워져 이리저리 도망칠 구멍을 찾고

멈춰있는 듯한 이 기다란 순간에도

나는 무척 바쁘다.


아침에 분명 느릿하게 일어났는데

아무런 일도 없이 종일 내내 바빴고

이내 잠자리에 들어야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분하기도 하다.


왜 오늘은 이렇게 바빴던 것일까?

잠들기 전에 궁금함이 생겨 속다짐을 해본다.


내일은 바쁘지 않겠다!


벽을 보면서 이야기 하던 시절 - 2

내 별명은 '청개구리'였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혹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반드시 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 늘 들었고, 거의 대부분 행동했다. 누군가가 이것이 좋다고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정말 좋은건가?' 였고, 다수 사람들이 정말 좋다고 하면 '그럼 난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을 해야 겠다'고 결심해 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좋은 것, 좋은 일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왜 나까지 좋은 자리, 좋은 물건, 좋은 조건을 모두 따라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내 머릿속을 이단 옆차기해왔다.

그렇게 좋은 것은 내가 아니어도 모두가 원한다. 걸맞은 사람, 더 원하는 사람이 그 좋은 것과 좋은 사람을 만나길. 어쩌면 너무 삐딱하게 굴었는 지도 모른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다들 그것을 원하니 나까지 경쟁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투쟁심이 저멀리 사라지는 것이다.

어려서 부터 그래왔던 덕분인지 어머니나 누나들은 무엇을 해라, 하지 말아라 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아무 말도 안하고 끙끙댈 수만은 없는 노릇.

어머니는 어느 선을 넘어서 참기가 힘들어지면 폭풍우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서 '그런걸까?'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보통사람의 일상에 어울리는 혹은 일반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삶을 산다라는 것에 대한 억지스러운 거부감이 드는 것이었다.

한 때는 '겁을 내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거부한다는 것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한 요소들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난 가진 것도 없으면서 무척 거만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자신으로 똘똘 뭉쳐있는 녀석이었다.

이런 이중성과 일상에서의 청개구리 성향이 나를 사람들과 차별화하는 방식을 다른 형태로 만들어오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은 타인과의 삶의 질을 비교하고 나누면서 차별화하고 살아가지만, 나는 스스로가 그저 다른 길을 가면서 혼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벽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난 벽과 이야기하듯 공상과 상상에 장시간 동안 잠기는 선까지 드디어 해낸 것이다. 대화의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벽을 마주한 채 이렇게 강렬한 상념을 끄집어 내어 발산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그 가능성을 대학 시절 3개월간의 금언과 침묵 속에서 찾아내었고, 드디어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 어느 선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주저 앉으면 연락이 안되는 나를 찾기 위해서 어머니는 열심히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우리 아들이 xxx명단에 있는 지 한 번 봐주시오.'

가족들이 안절부절하는 가운데, 사고 하루 이틀이 지나서 천연덕스럽게 집에 들어가서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낼름 잠자리에 들곤 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든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저 이 마음대로 며칠씩 집을 비우는 녀석의 숙면을 용인해 주는 것이다.

길에 누워서 혹은 벤치에 누워서 별이 뜬 하늘을 보며 잠드는 것과는 다르게 집의 바닥은 포근하다.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면서도 천장의 흔들거림을 느끼며 다시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의 고양이(2)

강아지 보비끄

"료샤, 내가 어제 뭘 본지 알아?"

"내가 알게 뭐야?"

뜨베르스까야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할머니가 던져준 고깃덩이를 씹던 료사는 갑자기 입맛이 싹 가신듯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습니다.

"어제 밤에 끄레믈 근처에서 봤는데, 예전에 왔던...아 뭐드라...그아르바뜨 역 근처에산다던 녀석 있잖아. 고양이를 찾는다고 했나? 뭐 그런 이상한 소릴하던 그 녀석이 진짜 암고양이 뒤를 ?아 다니더라구."

"흥, 줏대 없는 녀석. 그 녀석은 바보야. 개가 책을 읽을 줄 알면 뭐해? 주인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주제에 이상한 소문만 들어가지구."

"료사,떠돌아 다니는 건우리도 마찬가지잖아?"

"그게 내 말이야. 잘들어, 싸샤. 주제 파악도 할 줄 모르는 녀석들은 다 멍청이라구. 그 녀석은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돌아다니는 멍청이이야! 알겠어?"

료사는 큰 소리로 화 내듯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보비끄의 행동에 대해서 무척 궁금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지금 당장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아르바뜨로 가서 보비끄의 그 뒷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보비끄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한 달 정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5월이 되어서 모스크바도 새싹이 돋고, 날씨도 따뜻해질 무렵 어느날 오후 퇴근 시간 무렵에 보비끄가 어슬렁 거리면서 버스에서 턱하니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모스크바의 강아지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시내에서는 퇴근 시간 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급적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비끄는 퇴근에 사람들이 붐비는데도 태연하게 사람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내리더니 터벅터벅 걸어서 뜨베르스까야 역으로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보는 녀석인데?"

보비끄를 처음 발견한 것은 싸샤였습니다.

누런 털의 커다란 잡종견.

털의 군데 군데에는 먼지와 털이 엉겨붙어 있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털이 빠진 듯한 느낌이 나는몸집이 커다란 강아지였습니다.

하지만, 허기 진 모습에 비틀비틀 거리며 겨우 걸음을 옮기듯이 그 커다란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역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늘 이 시간이 되면 역 주변의 강아지들에게 고깃덩기를 던져주는 할머니 앞에 주변의 강아지들이 모여들 때,그 녀석은 어느새 다른 강아지들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할머니가 휙 던져주는 고기를 덥썩 물었습니다.

"이봐 얼간이. 여긴 너희 집 안방이 아니야. 꺼져."

"미안해. 하지만 난 벌써 3일째 굶었고, 밤마다 잠을 자지 못해서 힘들고 배가 고파서 쓰러질 지경이야."

"그건 네 사정이지."

"할머니는 나에게도 던져준 거야, 이 고기 조각을. 그건 너희들도 봤잖아."

"그건 그렇네."

"뭐?"

"할머니가 던져준건 사실이잖아..."

"입닥쳐 이 바보야!"

대화 중간에 끼어든 싸샤에게 료샤가 으르렁 거리자 싸샤는 꼬리를 말고 기가 죽어서 몸을 웅크렸습니다.

료샤가 싸샤에게 화를 내고 있는 동안 그 누런 강아지는 자기 앞의 고깃덩이를 물고 한 쪽 구석으로 자리르 옮겨 고기를 뜯어 먹었습니다.

싸샤에게 화를 내고 나니 료샤도 그 다음에 다시 할 말을 잃어서 바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누런 강아지를 노려보면서 고깃덩이를 물고 자신이 늘 누워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옆에 기가 죽어 있던 싸샤는료샤의 눈치를 살피면서누런 강아지 옆으로 가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너 왜 삼 일 동안 아무 것도 안먹은 거지? 설마, 자살하려고?"

"..."

"죽을 생각도 아니면서 일부러 아무것도 안먹고 다닌거야?"

"..."

"오랫 동안 굶어서 말도 잊어버렸나? 너 어디서 왔냐? 내가 여기 녀석들은 대충 아는데...시 밖에서 왔냐?"

"아니, 아르바뜨 역 근처에 살아. 아...좀 살 것 같다."

"헤에~. 바로 옆에 살고 있었잖아."

할머니가 던져준 고기로 우선 허기진 배를 달랜 누런 강아지는 한숨을 돌렸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책을 봤어. 이전에 보지 못한 그런 내용이 담긴 책을 봤지..."

"하하하, 개가 책을 읽는다구? 사람들은 그걸 '개같은 소리'라고 하지."

옆에서 싸샤와 누런 강아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료샤는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책? 무슨 책을 읽었는데?"

"보통은 소설책 같은 걸읽어. 하지만 내가 그 때 봤던 책은 좀 다른 책이었어."

"책을 읽는 개라...근데, 너 이름은 뭐냐?"

"내 이름은 보비끄, 사람 말을 하는 고양이를 찾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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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마리안느와 보비끄의 어드벤처는 다음주 이 시간에...-_-;

누구나의 고양이 (1)

마리안느

'팸팸 팔팔 팬팔라~, 열려라 고양이문'

귀엽고 깜찍한 마리안느는 새벽녁 해가 뜨기 전에 모스크바의 모든 고양이들이 모여든다는 고양이 문 앞에서 주문을 외쳤습니다.

사실 마리안느는 동네에 있는한국식 식당에서 일을 하는 아가씨입니다.

아침 1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식사 시간 2시간을 제외하고는하루 꼬박 8시간씩 일주일에 5일 동안 '하얀날개'라는 한식당에서 일을 합니다.

쉬꼴라를 졸업하고, 우니베르시쩨쯔에 가거나 군대에 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다지 공부에도 큰 취미를 못느끼고, 집에서도 기대를 크게 받지 못하는 처지에 그냥 사회로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쉬꼴라를 막 졸업한 젊은이에게 사회라는 곳은 그다지 친절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되었고, 아무 생각없이 찾아가서 시작한 사무실의 사환 일을 이틀간 하다보니 그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리안느는 출근한 지 3일째 되던날 오후에 사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답답해서 일을 계속하지 못하겠어요. 오늘까지 일한 급료를 받고 싶어요."

하지만 대머리까진 구두쇠 사장은 오히려 화를 내며 마리안느에게 당장 꺼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물론 3일간 일한 급여도 한 푼 안주고 말이죠.

마리안느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알겠다고 이야기를 한 뒤 문을 닫고 돌아서니 그만 화가 나버렸습니다.

화가 난 채로 길을 걷다가 강가에 있는 '하얀날개'라는 한국식 식당의 '직원 구함' 이라는 간판을 보고 대뜸 들어가 버렸습니다.

화가 아직은 진정도 안되었지만, 마리안느는 무슨 말인가를 해야 했습니다.

침착해야 했는데, 그만 그곳의 사장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선 이렇게 말해버렸습니다.

"내일부터 일하겠어요."

그래서, 마리안느는 '하얀날개'라는 한국식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안느는 16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에 개구장이 같이 생긴 금발의 아가씨입니다.쉬꼴라에서 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이해력이 좋고 사람들의이야기를 조용히 즐겨 듣는 성격이랍니다.

또한, 쉬꼴라에서부터 사귀어온 남자 친구와주말에는 영화를 보거나 공원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아가씨랍니다.

그런 귀엽고, 착한 마리안느는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줄 뿐아니라 손님들이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게끔 잘 시중을 들어 주었습니다.

어느덧 일을 하게 된지 3개월 쯤 되었을까요?

해도 점점 일찍 지고, 날씨도 쌀쌀해져가던 9월 초의 어느날 어떤4명의 한국인 손님들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 말을 하는 어떤 고양이 이야기였습니다.

그 네 명중 한 명이 열심히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해대었지만, 나머지 세 명은 계속 다른 이야기를 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마리안느에게 잠시 말하는 고양이 이야기를 하자, 마리안느는미소를 띄며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날 팁을 전해준 고양이 이야기를 하던 사람도 말도 특이해서 그 사람과 함께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안느, 당신도 안믿는군요. 모스크바에 정말로 말하는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음...하지만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잘했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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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리안느와 고양이를 연결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스토리는 다 짜여져 버렸으나 글을 계속쓰기가 너무 힘들다...대학교 다닐 때처럼 앉은 자리에서 A4 정도 되는 글을 7~8장씩은 못쓰겠다. 이거 나눠쓰다보면 스토리가 꼬이거나 잊어버리는게 다반사인데...마구 써내려간 뒤에 수정하는 게 좋은데...아무튼...힘드니...나중에 써야할 듯...

벽을 보면서 이야기 하던 시절 - 1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모 친구 아들이 갑자기 말을 안해서...그 이모 친구가 속병을 앓다가 암으로 죽었단다."

그래도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고, 이내 석 달이 흘러갔다.

내가 왜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만,

나이도 한 참먹은 녀석이무슨 고집으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만,

그런 불효를 하면서도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별로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단지 3개월이 넘게 나는 말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무료한 시간이라고 생각될만한 시간이 아주 쉽게 훌쩍 지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계속 벽만 보고 산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었다.

집에서는 거의 내 방에 틀어 박혀서 대부분 책 읽는 것으로 소일했다.

가끔은 책읽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서 웃고, 울고, 심각해지기 일쑤였고,

주말에는 정신없이 한 두 권씩 넘기다가 홀딱 밤을 새워 아침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몸이 지치거나 피곤해지면 그냥 푹 고꾸라지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지겹게 재미 없었고, 어떤 날은 흥미로움에 몸을 떨었다.

똑같이 글로 써진 것들이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과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게 혹은 느낄 수 있게 보이지 않는 활자라는 것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한 장씩 책장을 넘기다 보면...어느덧 왼손에 잡혀가는 책의 두께가 점점 굵어지고 마지막 장을 넘기면 아쉬움에 어쩔줄 모르는 것이었다.

책을 품에 안고 몸을 좌우로 한 두 바퀴씩 이리저리 굴리면서 그 여운에 몸을 맡겼다.

바로 새로운 책을 꺼내 읽으면, 혹은 이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 읽으면 마치 커피에 프림을 넣듯이 서로 다른 감정이 스멀스멀 녹아서 퍼질 것 같았다.

하나의 책을 읽자마자 새로 읽을책을 선택할 때에는지금 내 몸에 가득한 감정과 이 새로운 감정이 잘 어울릴 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감정들이, 읽었던 내용들을 통한 상상들이 나를 자극하고 요동치게 했다.

감성적으로 만들었고, 무엇인가를 통해서 이를 분출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 것들이 수 많은 감정들을 만들어 내었지만 여전히 난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면서 그 동안 살아왔는지, 내가 이렇게 오후를 보낸 시간을 이전에는 어떻게 보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도데체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 졸려서 나중에 쓴다...마구 쓰는 글이니 끝이 어떻게 될련지...

그녀와 나의 바게뜨 빵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그럼,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어디지?

모스크바는 러시아 수도로 87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그보다 작은 500만 명 가량이 살고 있는 러시아 연방의 제 2의 도시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과거 제정러시아 시절도 있었고, 1914년 '페트로그라드'라고 불리다가 1924년 레닌이 죽은 뒤로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국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직전 러시아 정교의 작명에 걸맞은 '성 베드로의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된다.

"음...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 사온 바게뜨 빵을 손으로 뜯었다.

"뭐가 그래?"

아직 그녀에게는 내가 러시아로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벌써 영하의 날씨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제 2의 도시래. 예전에 '레닌그라드라'고 불리던 곳이라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되서 감동 받은거야?"

그녀는 장난기 섞인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아니, 러시아에서 모스크바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울이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삶은 아니지 않을까? 뭐...그런 생각을 잠깐 해봤어."

"흠...왠 뚱딴지?"

"러시아 사람들도 돈을 벌려면 모두 모스크바로 몰려드는 걸까? 농촌은 점차 피폐해 가고 도시로, 수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

"러시아는 아직 다 그런 건 아니겠지?"

그녀는 내가 가끔 생각나는대로 던지는 이상한 단어들의 조합에 이제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멍하니 뱉는 말들을 듣고 눈이 동그래져서 이상한 사람을 보듯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얼굴을 들고 장난을 치거나, 물끄러미 한 번 쳐다볼 뿐 당황하거나 놀라지는 않는다.

"러시아라고 다를라고. 다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겠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기다란 봉투에서 바게뜨 빵의 끝을 꺼내 올려 조금씩 뜯어 입 속에 우겨 넣으면서 이야기 했다.

"근데, 그 바게뜨 맛있어?"

"응, 맛있어."

"난 바게뜨 왜 먹는 지 모르겠던데..."

"씹으면 고소해, 씹는 맛도 좋구."

그녀는 바게뜨 빵을 먹지 않는다. 종종 내가 마른 오징어 다리 뜯듯이 힘껏 조각을 뜯어 내면 놀랍다는 표정으로 빤히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막 오븐에서 꺼내 진열대에 올라온 바게뜨 빵은 고소한 온기가 빵의 외부를 감싼다. 그 따뜻한 고소함이 점차 딱딱해지고, 질긴 외피를 형성할 때 그 속은 수분과 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속살로 채워 진다.

바게뜨 빵 자체는 특별한 향이나 음식재료가 들어가지 않아서 좋다. 빵칼로 가래떡 썰듯이 잘라서 생크림에 찍어 먹는 것도 좋겠지만, 손으로 조금씩 뜯어서 꽈악 어금니에 힘을 주고 씹어 먹는 게 단단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의맛을 더해준다.

프랑스인들이 아침에 한 잔의 까페오레와 함께 먹는다는 길쭉한 바보같이 생긴 바게뜨 빵.

왜 바게뜨를 먹는데 러시아가 생각나는 걸까?

어쩌면 러시아 관련된 글을 읽어서 러시아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럼, 베트남와 관련된 글을 읽으면서 바게뜨를 먹었어도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을까?

바보같은 생각.

그녀는 잠들기로 한 것 같다. 어느새 작게 쌕쌕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깜짝 깰 것 같아 작아진 빵 먹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짧아진 바게뜨 빵을 보니 갑자기 소공녀 생각이 떠올랐다. 멜키세딕이 갑자기 나타나서 '빵을 좀 나눠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약간은 건방지게 말을 하면, '공평하게 나눠 먹는 건 재미없으니, 넌 약간 딱딱하고 질긴 껍질을 먹을테냐? 속의 부드러운 빵을 먹을테냐?'라고 물어 보고 싶어졌다. 그러면 영리하고 지혜로운 멜키세딕은 '조금의 부스러기면 돼.' 라고 태연히 이야기할 것 같다.

멜키세딕, 나도 피곤하구나.

먹다 남은 바게뜨 빵을 종이 봉투에 잘 넣어 경대 위에 올려놓고 잠들기로 했다.

"이제 이 빵은 전부 네 거야."

그녀는 옳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모진 삶을 살아오면서 그녀에게 위안 주었던 작은 믿음들에 대한 일부들이 상실된 느낌이 파고들었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아!'

그녀가 외치던 소리는 염분을 머금은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흘렀고, 그녀는 이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또한 미칠 것 같았다.

도데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두려워 했다.

사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라고 누군가 이야기 한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자신 스스로는 정치적인 경계에서 머물러 있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현상과 진실의 간극 사이에 작은 점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그녀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혹은 우연히 벌어진 것들이라고 말한다.

현상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실제적인 경험의 결과이고, 그것이 현재의 모습을 대변하는 자료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진실이 다른 너머에 있다고 굳게 믿어왔고, 그 믿음에 대해서 의심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머물러 있는 그 작은 한 점에서 그녀는 하루 저녁 정도는 눈물을 흘리고 지쳐서 잠들어야 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고, 홀로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그 길들은 그녀의 이러한 생각들 속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생길 것이다.

마음이, 믿음이, 그리고 진실이.


그 경계에서 그녀는 확성기가 되어 보고자 했지만 깡통 따개가 없이는 그들의 머릿속의 내용물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이내 알아버렸다.

수 없이 메아리치는 빌딩 위에 올라 발가벗은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끼고, 변하지 않는 사면의 유성펜으로 그어 놓은 그들의 상식을 돌아본다.

어리석음의 샅바를 붙잡고 용을 쓰는 그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제내면의 것들을 슬퍼하면서 불행의 옷을 입은 영혼과 떠도는 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도 슬프게 되었다.

블로그씨의 고민

네이버의 블로그씨는 전지현양에게 멋진 홍보를 부탁하였습니다. 까페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렸기 때문에 블로그도 함께 묻어서 홍보를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죠.

전지현양은 블로그씨의 부탁을 그냥 들어줄 수가 없는 처지라는 것을 블로그씨에게 이야기하고, 출연료를 듬뿍 주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블로그씨는 XML로 자료를 저장하고 HTML편집기능이 없는 블로그를 멋지게 홍보하려면, 그녀의 애들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오케바리~'라고 엉겁결에 큰소리로 외쳐버렸습니다.

그 때 옆집에 살면서 자신 만의 강력한 편집기능을 적은 내용를 몰래 살짝쿵 여기저기 뿌려대던 인티즌의 마이미디어군이 깜짝 놀라버렸죠. '오케바리~' 소리를 '어따 버려!!'라고 들어버렸거든요. 너무 놀란 탓인지, 진정이 안되서인지이번에 드림위즈양의 집에 데릴사위가 되기로 했다는 군요.

전지현양의 까페와 블로그 홍보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거기에다 게임, 연예인, 음악 등을 연결해서 블로그를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네이버 블로그 개발자들은 기획자들이 두껍게 만들어 놓은 블로그 상용 아이템을 만드느라 죽을 똥을 쌌습니다. 스킨에 도트 작업에 게임에 레이어 검토에 시간 가는 줄 몰랐죠. 블로그씨는 그걸 보면서 헤헤 웃었답니다.

블로그씨는 홍보도 되었고, 상용 아이템과 과금시스템을 갖추자 이제 돈 벌 생각에 기뻤습니다. 이제 정식 런칭만 하면 아이템골짜기의 은화를 사람들이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양에게쏟아붓는 도토리처럼 펑펑 써주는 상상에 동그란 머리에 솟은 몇 가닥의 털이 다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아이템골짜기를 오픈하면서 마음씨 좋은 블로그씨는 5닢의 은화를 사람들어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스킨과 퍼스나콘은 6~7닢짜리부터 판매를 하기로 했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블로그씨는 믿고 있었거든요.

무슨 일 일까요? 사람들이 아이템골짜기에 몰려 오지를 않았습니다. 10닢만 천원을 주고 충전하면 이 멋진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도무지 사람들이 꼼짝을 하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상해진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까페 이용에 돈을 내라고 윽박지르다가 버림받았던 프리챌이 '섬'(SUM: Small GroUp Media)이라는 매혹적인 누님을 소개했습니다. 이 이쁜 누님은 12명이 모여서 모두 운영도 하고 속닥거리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답니다. 하루에도 섬 누님께 3,000~4,000명의 사람들이 애정 공세를 펼쳤답니다.

이에 화가 난 블로그씨는 '은화 7닢 무료쿠폰'을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아...누구나 퍼스나콘이나 스킨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해주마~ 라고 블로그씨는 해맑은 미소로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속 내는 일단 써보고 또 사고, 또 사라!라는 심보가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퍼스나콘과 스킨을 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 주일이 지나고, 이 주일이 지나도 은화를 충전을 안하는 거에요. 거기에다 하루에 2,000~3,000명은 블로그씨에게 집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하더니, 오히려 은화를 나눠주고 사람이 줄어들었답니다. 왠일일까요?

블로그씨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왜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양에게 쏟아붓는 도토리처럼 은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프리챌의 섬 누님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는 것일까? 무엇인가 빠져있는 게 아닐까?

블로그씨는 계속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큰 맘 먹고 아이템의 사용기간도 늘리고, 카테고리도 세분화하면서 은화 나눠주기 이벤트도 열심히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프로모션을 위해서 기획자들을 달달 볶음면에 함께 넣어서 기름지게 튀기기로 했죠.

아...새로운 대안이 나오기도 전에 다음이 외계에서초청한 플래닛씨가 지구를 방문하여, 짜잔하고 단숨에 오픈되어 버렸답니다. 플래닛씨는 멀티미디어게 강한 플레이어로 사진 이미지를 슬라이드로 동영상처럼 보여주는 마이TV를 필두로, 별천지를 보여주겠다면서 별똥별을 사람들에게 마구 뿌려대었습니다. 사람들은 좋아라 하면서 별을 손에 꼬옥 쥐었지만...별에는 이렇게 써 있었답니다. '유효기간 9월 30일까지'

블로그씨는 그걸 보면서 옛날 생각에 허허 대었습니다. '지들이 <까페>라는 단어를 무단 도용했다고 나에게 난리를 쳤으면서, 서태지의 <마이플래닛>을 그대로 베끼다니...웃기는 놈들' 하지만, 플래닛씨의 별 뿌리기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것을 보는 블로그씨는 웃고 있을 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추가로 <은화 3닢 무료쿠폰>까지 다시 나눠주면서 속쓰린 마음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블로그씨는 빨리 돈을 벌고 싶은마음이 계속 방망이질 쳤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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