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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섬의 비밀
드라마는 원래 잘 안보지만 각단이 이다혜가 나온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올림픽 덕분에 결방해서 아쉬운 하루하루.
요즘 즐거움을 주는 다혜양.
원하는 것. 일상. 두려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단어. 언어. 미래.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미지. 실제. 노력이 필요한 것.
존재. 의미. 시간. 도데체 왜?
정확하게 말로 풀어서 논리적으로 전개를 하거나 혹은 구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 것일까?
명확하게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구체화한다는 것 마저도 반복 학습에 의한 것인지?
아니라면 개개인의 차이에 의한 구현. 감정이 깃든 혹은 특별한 능력의 발현.
좋고 나쁨의 경계는 기준을 정해 둔다면 분명하기는 한데, 정말로 그런 것인지?
승부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주 작은 차이로도 그런 결론의 승패 구분이 가능하다.
모든 이야기에는 결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그저 이야기가 되다 말면 안되는 것인지?
생각이라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이, 산다는 것이 결론으로만 마무리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저 오늘은 무책임하게 또 하루를 보낸 듯하다고 창가에 의자를 하나 갖다 놓고 멍하니 앉아서 이야기하면 안되는지?
산다는 것.
그것이 지속적으로 나를 물 마시게 하고, 밥을 먹게하고, 숨을 쉬게 한다.
그다지 넓지도 깊지도 못한 인격.
자리를 밟고 올라서서 또 오르고, 또 오르고, 또 오르고
늘 쉽게 혹은 많이 받는 사랑.
참 인생을 손쉽게 살아온 듯한 어느 하루. 난 무척 게으르다.

그저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수업 듣고, 대학을 가고.
영화를 찍고, 애니메이션을 찍고,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다 일을 하고, 일을 하다 게임을 하고.
주임이 되고,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고.
그저 된다.
하고 된다.
정말 좋아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잘 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잘하는 것을,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해서 가치있는 혹은 더 생산성있는 일을 하는 것일까?
생각.
해 본다.
이런 저런 생각.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쉽게 받아만 오면서 살아온 인생.
생각해본다.
음...하고 생각해보니 꽤나 인생은 轉禍爲福,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야기도 때로는 수긍이 가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삶의 어느 순간은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주시기도 하시는 것이다.

가끔은 알 수 없는 도끼메끼 메모리얼의 나무 그늘 밑에서
말도 안되는 놀라운 일들이 한 시기의 졸업식을 앞두고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두 갈래의 길에서 '그래 결심했어!'하고 소릴 지르기 전에 뭔가 확신이 필요할 때
선택의 길이 애매모호하다면 참 괴로운 일이겠지만,
결심을 하게 하는 유인의 끈이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라고 말한 만도 하다.

특별함도 없이 지나왔다고 생각한 길들을 되돌아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던 일도 있던 것 같은데,
까짓거 새로운 모험 한 두 번쯤 더 한다고 어려울 것도 없다.

흐느적 흐느적 걸쳐 놓고 꽤나 많이 걸어온 인생의 길이 나쁘지만은 않다라고 생각하고 유쾌해지면
뭔가 하나 둘 쯤은 믿음에 보답받는 일들도 생기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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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론 혼자서 실실.
하지만 흐람의 가로등처럼 뚜욱 서서...길을 간다.
대부분의 여름에 우리 서울 집은 그다지 더운 편이 아니다.
거기에다 금년에는 누나와 조카가 머무르고 있어서 엄마가 에어콘을 펑펑 틀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금년 여름이 더운 것은 사실이고, 습도도 모스크바에 비할바가 아니다.

늦잠을 자다가 방이사님과의 점심 약속도 못지키고, 겨우겨우 씻고 나오니...
약속 시간까지는 한 2시간 여가 남았다.

엉겁결에 나와서 PC방으로 걸어가는데 날이 덥기는 덥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해야할 일이 없다는 것과 애써 전화를 받거나 고민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인지
가슴을 짖누르는 답답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편하다고나 할까?

뜨거운 거리에서 사람들이 지쳐서 혹은 찡그리고 지나쳐 가는 데도
그저 이 걸어가는 일상이 담담한 것이 참 좋구나.

한국의 상황과 삶의 아둥바둥에서 내일은 어떻게 될까 고민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지만
아무런 목적 의식도 없이 천천히 길을 걸어가는 것이 좋아졌다.

이런 저런 기대, 다들 좌불안석에 자리와 돈에 매여 힘겨워 한다.

그깟 몇 십년의 인생 왜 그렇게 힘든 것인지. 힘들여 살아가는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귀차니스트로 살기에 타인의 행동에 대하여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때때로 스스로의 기분 개선을 위해서 헛소리처럼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참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이다.

깔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면 정중하게 메시지라도 날리는 것이 예의다.


모스크바에서 장을 보다가 우연찮게 뻥뒤기를 보고 낼름 집어 들었었다.

그런데...한국에서 먹어보았던 뻥튀기의 맛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을 겨우 튀겨낸 참 맛없는 뻥이요 과자일 뿐이었는데...이게 이런 맛이었던 것 같다.

기대했던 맛은 아니라도 기본은 할 줄 알았는데, 정말 허무한 맛일 때의 느낌.

참 개념없는 인간들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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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뿌찐과 메드의 이미지를 조목사님과 이목사님에게서 보았다.

9시 예배를 얼마만에 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담임목사의 변경 이후 9시와 11시는 이제 조목사님이 설교를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담임목사라는 타이틀은 이제 이목사님이 맡으셨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담임목사이면서도 담임목사로써의 인식보다는 대리의 인식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듯 보였다.

이 교회의 주인은 다른 사람, 혹은 이 교회의 주체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되어 있고, 그럴 것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과 성도들이다. 목회자는 섬김으로써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메드는 뿌찐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그 어떤 정치적인 배경도 없이 가장 젊은 대통령이 되었다.

160이 조금 넘는 단신의 삐쩨르 출신, 뿌찐의 후배, 그의 가장 이야기를 잘 듣는 젊은 정치인.

선한 이미지의 한 젊은 정치인이 러시아를 이끄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서대문 시절부터 C.A 아동부를 거친 이목사에서게 왜 그 이미지가 보였던 것일까?

그 뒤에 서있는 뿌찐의 이미지를 왜 조목사님에게서 느꼈던 것일까?


리더쉽. 당신의 물음표.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피를 이야기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한 한 목사님을 다시는 교회 강단에 부르지 않았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하였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혈의 십자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시국의 아픔이나 이 땅의 슬픔에 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주신 작은 메타포는 '믿음, 소망, 사랑...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주어진 고난과 슬픔을 다른 사람이 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십자가를 받아 들인 것이다.

나의 십자가를 기억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방인이든, 아니든 그 '사랑'으로 타인을 배척하지 않고, 유대인의 닫힌 세상을 열어 보인 것이다.


당신의 물음은 무엇인가?


때때로 우리는 신앙을 강요당한다. 리더들의 사고에 긍정해야 하고, 리더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고, 리더들의 이야기에 따라야 한다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당한다.

과연 물음표를 가지는 것은 신앙인으로써 가져서는 안되는 것인가?

내가 가진 물음표에 다시 언젠가 느낌표를 하나더 붙이기 전까지 인생의 탐구를 거쳐서는 안되는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어볼 때가 되었다.

크리스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신앙의 정형화된 틀, 혹은 너무나도 작은 믿음의 범위라는 것을...

정말 아침의 따스한 한끼 식사를 주심도 감사하고, 타인의 아픔을 느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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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랫만에 끼옙스끼 바그잘이 있는 끼예프역에 내려서 걸어왔다. 이쪽은 서쪽으로 나가는 버스 노선과 기차역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도 북적이고, 지하철도 세 개의 노선을 갈아탈 수 있는 나름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끼예프 역에 내려서 나오면 바로 모스크바 강으로 나오기 때문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오랫만에 KFC에 들려 바스켓을 하나 산 뒤에 다릴 건너서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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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으로 걸어가다 찍어서 잘 안보이기는 한데...바닥 쪽으로 솜털같이 허연 것들은 모두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꽃가루.

말 그대로 커다란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꽃가루의 잔해들이다.

비라도 쏴 하고 오지 않으면 몇 날 며칠을 계속 날리는 이 눈발 같은 꽃가루 속을 걸어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요즘이다.

날씨는 정말 쾌청하고, 습도니 온도니 딱 좋기는 한데...이 꽃가루가 문제.

얼굴에 부딪히는 이 가루의 간질거림에 얼굴을 고양이 마냥 계속 비비면서 집으로 간다.
아마도 완전히 한국으로 들어 갈 듯 합니다.
어쩌면 직장 생활 10여년 만에 정말 휴가를 가질지도 모르겠네요.
모스크바 달 밝은 밤에 침대에 홀로 누워,
옆에 노트북 하나 전원 넣고 있노라니

한국은 인재요, 중국과 미얀마는 천재요
세상 꼴이 하아~ 수상해 말세 정말 올까 보냐

달러 폭락, 유로 급등에 잠깐이나 만난 위기 환율처럼 널을 뛰고,
한국만은 이상 환율, 달러 강세 수상하다.

눈을 뜨면 일거리요, 눈 감으면 고민일세
잠을 자는 겐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겐가

어쩌나...하다 텅빈 벽을 쳐다 본다

게으르기가 한이 없어 굴러굴러 부엌 가기도 귀찮아 질 적에  
뜬금없이 날아든 한 마리의 파리새가 홀연 날 조롱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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