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메일을 사용하면서 오탈자 수정해주는 기능이 있어서 영문 메일 쓸 때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대충 메일을 써도 단어를 수정해주니 정확한 철자를 몰라도 된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사전을 검색할 필요가 거의 없다)


오늘은 또 놀란게...메일 작성 시 작성한 글의 문맥을 읽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첨부된 파일도 잘 보았습니다.' 라고 문장을 쓰고 보내기를 클릭하니...


팝업이 뜨면서 '첨부된 파일이라고 작성하셨으나 본 메일에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이대로 보내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물론 스크립트로 처리하겠지만 이런 세심함까지 있다니...놀라울 따름.



갑자기 메일 이야기하니까 생각나는데...

한 오륙년 전에 네이버 메일을 사용하다가 불편해서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에 네이버 메일의 폴더 관리가 10개 제한이 있었던 것 같은데...받은 메일을 개별 폴더로 분류하여 자동으로 수령하게 하는 데 불편했다.


다음이나 구글 등은 그런 제약이 없었는데...폴더 생성이 10개까지로 제한이 되어 있어서 조금 불편했던 것 같다.


메일을 보내고 회신도 받고 한 뒤 한 일이년 후에 폴더 생성 제한 갯수가 변경된 것 같다.



아무튼, 사용자 입장에서 작은 부분이 큰 차이로 느껴지고 꽤나 놀라운 기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UX/UI 라는 것도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웅~ 요즘 재미있게 읽는 책이다.
아니 읽는다기 보다는 문장 숨 고르기, 새로 써보기 연습하는 중이다.

남영신 선생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하루에 잠시 펼쳐 보면서 연습장에 문장을 옮겨서 이리도 바꾸어 보고, 저리도 바꾸어 본다. 이거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갈래말 사전같은 일을 오랫동안 해오셨다는 것을 고종석씨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쓰신 좀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이렇게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는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늦게나마 보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다른 책 하나는 헌책방에서 글쓰기 연습용으로 좋을 만한 책을 발견해서 산 또 다른 바로 쓰기와 관련된 책으로 국어 선생인 한효석 선생이 쓴 책인데, workbook 형태로 간결한 설명과 연습을 반복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문장 쓰기, 말 하기 수업을 만들어서 이런 좋은 책들을 가지고 1년 정도 수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 우리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참고서 읽기와 '밑줄 쫙~!'으로 정신없이 필기하기를 반복시키며 문제 은행에 쌓여있는 문제를 누가 많이 풀어보나 경쟁을 시켜온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나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아무튼 난 아무 개념이 없었으니...-_-)

때때로 지나고 나서 내가 사용했던 말 안 되는 말과, 이상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과, 적절하지 못한 단어들을 되새겨보면 참 우습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뭐...이 블로그도 오류 천지)


시간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만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계속 흘러간다.

거기에다가 게으름이라는 녀석이 추가되어서 더욱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계속 흘러만 가는 것이다.

일을 할 때에는 그저 상황 내에서 긴장감과 알 수 없는 진행의 부담감으로 시간의 흐름이 일과 연관되어서 흘러가는데, 집에 계속 있다 보니 이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꽤나 직접적으로 느껴지고 내 몸의 움직임이나 생활과의 관계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뭐 그래봤자 겨우 삼 개월 가량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제 이렇게 긴 시간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보내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거기다가 시간의 사용에 대한 외부의 제약마저도 없는 상태를 지속하다보니 자율적인 시간의 사용이라는 부분에서 한 개인으로써 의지나 선택에 대한 부분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장 그르니에의 글들을 읽으면서 생각한다는 것, 사색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을까 라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곤 했다. 조용하게 주변의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듯한 혹은 그 안에 함께 있는 듯한 글에서 어떤 평온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이 그런 것이라면 아마도 지금의 내가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 있는 나를 보고, 다시 그 안에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


도서관에서 영문 글쓰기 관련된 책을 빌려왔다.
하나는 아주 유명한 영어 글쓰기의 작은책 윌리엄 스트렁크 주니어와 E.B. 화이트의 'The Elements of Style'.
그리고 다른 하나는 킴 베이커와 써니 베이커가 쓴 'How to Write : Internet'이다.


왼쪽의 책은 아마존에서 오래 전에 구매한 것이고, 오른쪽의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내용은 뭐...동일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나온 책은 번역본과 원본을 엇갈리게 반대편에서 시작하여 읽을 수 있도록 모두 담아 두었다는 점 정도가 차이일 듯 하다. (뭐 책 크기도 거의 같으니까...)
하지만 실제 차이는 꽤나 크다. 읽어보면 안다.
국내 번역본은 편집이 좀 눈이 아프도록 되어 있다. 파란 색상으로 강조를 하려고 한 부분들이 오히려 눈에 거슬리고, 폰트 역시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이와 반대로 원서는 단색으로 그 양과 진행은 가볍지만 단정하다는 느낌을 준다.
번역서가 그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아서 좀 아쉽다. 꽤나 좋은 책인데...

이 책은 분량도 얼마안되고 작은 책이다.
설명은 간결하고 단단하며, 또한 일반인들이 실수하기 쉬운 부분을 잘 잡아주는 좋은 책이다.


종종 영문 이메일 쓰는 일이 있어왔기 때문에 사실 영문 이메일 쓰기 책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진득하게 읽거나 참조하기도 참 애매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동네 서점에 가서 영문 이메일 작성과 관련된 도서를 보면 구성이 대강 이렇다.
1) 간단한 이메일 작성법 + 몇 가지 폼 구성 형식 + 약어 및 용어 설명 -> 약 10% 정도
2) 예제 이메일 -> 약 90% 정도

사람들이 뭔가 기존의 문장에서 바로 짜집기해서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서 예문집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야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양한 예제 이메일들을 이용하면 좋기는 할텐데, 나는 그런 걸 별로 원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을 보고서 편집해서 이메일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은 이메일이나 채팅에 대한 습관, 일반 예절, 글쓰기와 관련된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뭐 사례도 있고, 앞서 이야기한 이메일 작성 방법이나 구성, 약어 및 용어 설명도 있지만 제목처럼 글 쓰기와 관련된 내용이 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만약에 영문 이메일을 작성하고, 채팅을 하려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요즘 점심 시간에 읽고 있는 박기정 선생의 '도전자'.

65년도 당시의 대본소 용으로 나온 녀석이니 내가 봤을 리 만무하고, 혹은 만화가게에 들락날락 거릴 시절 한 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해도 내가 집어 들었을 리 없었을 게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봤을 때에는 꽤나 공감가는 만화. 누가 베스트셀러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하였던가.
아무튼 50/60년대를 지나는 시대적인 감정이 잘 녹아 들어 있는 듯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고우영 선생의 책들을 모두 읽고 도전자 복각본의 3권을 읽고 있다.
요즘 우리말 관련된 책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인 고종석씨가 쓴 우리글과 말에 대한 책들이 도서관에 여러 권 있다. 약간은 시니컬한 자유주의자의 냄새가 나기는 하고, 종종 딱히 결론을 내리는 것도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읽는 재미는 있다. 먼저 집어든 책...나머지도 한 번 읽어봐야 겠다.


우리말 바로 쓰기는 책이 간단하게 이야기식으로 되어 있는 편은 아니다. 뭐 그다지 읽기 어려운 판형은 아니므로 조만간 술술 읽어줄테고, 쓰새당은 간단하게 이야기식으로 작은 소재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읽기 괜찮은 편이다.

뭐...이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대학교 3학년 시절에 책읽기하던 게 다시 발동한 듯하기도 하고...재미가 있어 계속 읽게 된다.

용성이가 관악도서관의 존재를 알려줌으로써 나의 책읽기가 한층 즐거워졌다.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쓰는 책들을 얼마전 헌책방에서 구매하여 읽던 중 관악도서관의 장서에 우리의 말과 글에 관련된 여러 책들을 보게 된 것이다.

한글의 경우 최만리의 상소문과 한글 창제와 관련된 주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약간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국밥의 경우는 흥미있게 혼동되어 사용되어질 수 있는 낱말들을 비교하고, 이야기로 담아가면서 의미적인 혹은 적소에 맞는 사용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새롭게 빌린 우리말의 수수께끼도 꽤나 재미있는데... 언어라는 것의 발상부터 간단하게 시작하여 우리말의 탄생과 사용을 시간의 흐름 순으로 훝어 올라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한국어 용법 핸드북의 경우에는 좀 딱딱한 구성이다. 어휘와 낱말의 대비와 옳바른 사용에 대하여 사전식으로 정리한 책이지만, 그 설명이 때로는 너무 간략하거나 설명식이어서 참고하는 책 정도로 봐야할 듯하다.

사실 고종석 씨의 글들을 읽으면서 남영신 씨나 박용우 씨에 대한 사전 편찬 관련 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막 우리말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체계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읽고는 있는 상태이고, 여러 생각들과 해석들에 대하여 분별할 능력도 되지 않는 형편이다. 우리말 갈래 사전이라든가 분류 사전을 사서 한 번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요즘 계속 우리말, 우리글 관련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자꾸 읽을수록 재미가 있고, 한글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인간은 아쉽게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제로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해왔겠지만 그간 살아온 바에 의하면 '사고의 집중'이라는 측면에서는 싱글 태스크만 겨우 수용하여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가 마치 멀티태스킹을 실현하는 것처럼 인간은 개별적인 건들에 있어서 동시에 사고를 진행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데, 이는 실은 참 불가사의한 일이기도 하다.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인체의 그리고 두뇌의 기능들과 같이 연산하고 물리적인 구현을 한다는 것은 현 시점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이를 수행할 수 있다. 혹은 각각의 기능 구현이 가능한 파트들을 묶어서 이를 동시에 수행토록 할 수 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DVD와 책들을 다시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쉬는 기간 동안 게으르게 잠도 자고 놀고 먹는 사이사이에 이를 즐기고자 함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DVD를 보면서, 책을 읽고, 동시에 게임을 하고 싶은데...실제 이는 말도 안되는 불가능의 영역인 것이다.

시간의 축복 속에서도 게으르게 뒹굴면서 이런 불가능의 영역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또한 나이의 벽을 뛰어 넘는 집중력과 감성의 재활을 위한 상쾌한 상상 혹은 유치한 생각들도 같이 버무려 본다.

너무 과하다 싶은 욕심들이고, 선뜻 눈에 보이는 한계지만 이를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회사의 안에 있을 때도, 나와 있을 때도 하루가 지날때마다 또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글의 제목은 아래의 기사에서 따왔다.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10

뭐, 변절이라고 부르던지...자의적인 변화라고 부르던지...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배신감의 표현이라던지
모두 개개인의 이유야 있을테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이익'이라는 명제로 이뤄어져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정말 이 땅에 정의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역할에 대한 시대적 사명감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자꾸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현 시점에서 이를 대입해보면 한 기업의 변화와도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지워지지 않는다.

일본인으로 이야기되는 어떤 기업 총수의 변화로 인하여 회사의 근간까지 변화하고 있다.

어떤 이는 확실하게 예스맨의 역할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있고,
다른 이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흔들리고 있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라는 꺼풀로 기본 전제가 변하고 있고...

혹은 선택지의 정착은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업과의 안녕을 고하는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라는 테두리 내에 삶을 영위하는 일반인이 쉽게 회사와도 같이 이를 인식할 수는 없는 노릇.

나같이 마음 편한 사람이나 이리저리 ㅋㅋ 대지만,
실상 산다라는 것은 영속적이지 않으면 그 지속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그저 많은 이들이 산다라는 명제 하나만으로도 변화와 변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옳은 것이 무엇인가? 따라야할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자연히 선택한 길이 어둡고 힘들어도 가야하는 것이다.

나의 움직임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움직임에 나와 나를 둘러싼 곳에 미미하더라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분분분 혹은 놈놈놈

사람들은 세상을 그렇게 지겹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모스크바를 떠난다.
꽤나 힘들고, 지겨운 시간들도 참 많았고...그 동안은 '인내'라는 단어로 버틴다 라는 생각이 있었다.
막상 떠날 때가 되니 꽤나 미소도 짓고, 여유롭다.

조금만 있으면 손익분기점도 넘을테고, 어려운 시절은 대체로 끝나갈지도 모르지만
머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편견도 생기고, 고집도 생기고 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손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처럼 싸운 뒤 5분 후에 웃으면 간식을 나눠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도,
기분 좋았던 것도,
긴장되었던 것도,
지겨웠던 것도,
모스크바에서 겪었을 적지 않은 사건들도 이제는 안녕이다.

단지 하나 메달을 딴 마냥 4년 가까이 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운영하고, 회사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

젊은이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아무튼, 그런 시간들이 훌쩍 또 나의 30대 중반을 먹고 사라져 버렸다.

게으른 내가 또다시 몇 개월 간의 긴 백수의 시간을 가진다고 걱정하시는 어머니.

너무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

돈이 문제가 아니다.

살아가는 것은 어찌어찌, 경쟁이라는 명목으로 상대 비교를 하면서 우월감을 가지는 부류는
이미 사전에서 지워버렸으니,
어설픈 채 무리에 끼려고 하기보다는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해간다는 정도.

그런데, 그런 인생마저도 쉽지만은 않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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